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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Apr 11. 2021

어느 미스코리아의 눈물

그녀는 미스코리아다. 첫 만남에 유난히 눈에 띄게 작은 얼굴, 큰 키 그리고 훈련된 미소를 장착한 그녀가 조금은 예사롭지 않은 외모임을 알 수 있었다. 우연히 알게 된 그녀는 이따금 카카오톡이 와서 "언니~ 우리 밥 먹어요" 하곤 했다. 별 일이 없으면 굳이 사람 만날 약속을 잘 잡지 않는 나는 몇 번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8개월 만에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최근에 조금씩 일을 시작했다고 했다. 예전보다 한결 좋아 보였다.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그녀이지만 웬일인지 그녀는 나를 만날 때마다 대화 중 종종 눈물을 비추곤 했다.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얘기할 때마다 아직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터져 나오는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갑자기 "언니, 나 미스코리아였어요."라고 했다. "음... 음? 아... 멋지다^^"라고 해주었다. 그런데 "아무도 몰라요, 언니한테 처음 말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알면 안돼요, 우리 남편이 싫어해요...".... "What...??" 


그녀는 자신이 과거 미스코리아에 출전했었던 얘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특별한 경력이 없었던 그녀는 사업을 하시는 아빠의 권유로 그것이 아빠에게도 자신에게도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 판단하여 출전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고되었고 당시 20대 초반의 아직 어린 여성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힘든 사회생활을 했어야 했단다. 그리고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조금 이른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남편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남들의 특별한 시선이 편치 않아 꼭꼭 숨기라고 했단다.


나는 "왜 그걸 숨겨? 그게 숨길 일인가 자랑스러운 일이지. 열심히 노력하여 이루어낸 너의 경력이고 남들은 쉽게 해 볼 수 없는 경험이 자나.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경력으로 보이는데."라고 말해주었다. 나도 이런데 미스코리아 언니들이 알면 적잖이 격분할 일이다.






왜 남편은 그리고 아내 자신조차도 그렇게 생각하며 지낼까?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가진 화려한 외모도 좋았기에 아내를 선택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보기에도 좋은 그 외모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 않다는 남자의 하릴없는 이기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본인은 그렇다 치고 아내에게도 스스로 자신의 과거를 숨기라고 말하는 것은 아내의 과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무시와 월권인 동시에 개인의 자유의지마저도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려 하는 것으로 보여 남편의 아내에 대한 태도가 매우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게다가 이어지는 여자의 대응 역시 '남자의 이기심을 충족시켜 주는 편리한 여자'로서의 기능을 해 주는 것을 미덕으로 치부하는 가정적 사회적 배경 속에 자란 여자의 속절없음으로 보여 안타까웠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그녀는 절대로 원치 않는 둘째를 낳자고 한단다.

난 가끔 여자들이 '남편이 자기한테 아이를 낳자고 조른다'는 얘기를 들으면 소스라치게 놀란다.  


임신과 출산은 오롯이 여자 혼자서 자신의 몸을 부서뜨려가며 감당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아내가 원치 않는 임신을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조른다는 것이 내게는 '자신의 목표 또는 욕심을 채우고 싶어 상대가 희생해줄 것을 강요하는 폭력'으로 느껴진다. 심지어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결국 낳으면 너도(우리가) 좋을 거야'라며 보장되지 않은 핑크빛 미래만을 강조하며 상대가 겪을 고통과 시간을 경시하는 경우다.


물론 부부가 함께 원할 경우에는 다른 얘기다. 내가 만난 많은 부부들은 아이를 원하지만 남자가 임신과 출산을 대신해 줄 수 없기 때문에 여자에게 결정을 맡기는 편이다. 그런 경우는 보통 아름다운 결말로 맺어진다.


경험상 임신과 출산 그리고 이어지는 모유수유 및 육아의 고통과 시간은 나의 육체와 정신을 통째로 갈아 넣어도 잘 될까 말까 한 엄청난 작업이었다. 따라서 미처 몸과 마음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아이를 만나게 된다면 놓쳐야 할 부분이 많이 생긴다. 그럴 경우 밀려오는 후회와 낮아지는 자존감은 여성에게 또 부부관계에도 평생 큰 대미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임신과 출산은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시부모님, 친정부모님, 남편 등) 말과 요구로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 또한 부모의 기쁨의 도구가 아닌 또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이므로 아이 또한 성숙한 부모 밑에 인격적으로 대우받으며 자라야 할 권리가 있다. 


어느 누가 자신의 과거가 부정당하는 것이 좋을까. 내가 과거에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던 시절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것을 숨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편이 있다면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가며 즐겁게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특별히 대단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나라면 어떨까...라고 입장 바꿔 생각해보면 곧 알 수 있는 서로에 대한 예의와 인격적인 존중 그리고 사랑. 그것이 전부다.


여전히 아름다운 MISS KOREA. 

그 눈에서 눈물이 거두어지길. 

화려한 외모처럼 더욱 반짝반짝한 인생을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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