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지 6개월 즈음되었을 때 입덧이 채 가시지도 않았던 상태에서 오랜만에 시부모님과 식사를 하였다. 뱃속의 아이가 아들이라 기쁘다고 하시며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가 있으니 이름에 그 돌림자를 가운데에 넣어 이름을 우리가 알아서 지으라고 하셨다. 이게 무슨 말이지?
처음 아이를 가졌을 때 나는 머릿속에 평소에 생각해둔 이름들이 많이 있었다. 기다리던 아이였고 내 아이의 이름만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아이와 잘 어울리도록 직접 지어주고 싶었다. 평생 살아가는 내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이름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아이의 이름을 짓는 것은 어느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온전히 우리 부부 두 사람만의 몫이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할 것이었다.
불러오는 배를 부여잡고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던 중,
“오빠, 우리 아이 이름 뭐가 좋을까? 이런 건 어때?”
“... “
“아마, 우리 집에 돌림자가 있을 거야, 그래서 조카가 그 돌림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잖아 그래서 이름 지을 때 정말 마땅한 게 없어서 고민 많이 했다고 들었어.”
“돌림자? 그걸 왜 써야 해? 꼭 써야 해? 그 촌스러운 돌림자를? 난 별론데…그 돌림자 넣어서 뒤에 어떤 글자를 붙여도 다 이상하잖아…”
열 달을 꽉 채운 입덧을 하는 통에 임신 내내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그렇게 이름도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출산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얼굴을 보고 어울리는 이름을 지어주면 되겠다고 생각했었다.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불편한 몸으로 수유 알람만을 기다리며 지내던 때에 남편이 나가서 출생신고를 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때 지나가던 말로 ‘그나마 이 이름이 제일 낫네'라고 하며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던 그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떡하니 하고 온 것 아닌가.
나는 하도 정신이 없던 통이라 지나고 나서야 정신이 번뜩 들었다. 뭐라고...?
그날로부터 나의 마음속 불편함은 커져만 갔다. 나는 출생신고 후에도 아이를 단 한 번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 계속 태명으로만 불렀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열 달 입덧도 모자라 출산에 젖몸살에 그 개고생은 내가 혼자 다해 나의 아이를 낳았는데 왜 대체 뭐 때문에 내가 부르고 싶은 이름조차 하나 못 짓는 거지? 나날이 억울한 마음에 화가 났다. 그리고 얘기를 꺼내기만 하면 당시 남편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
‘너는 우리 집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아예 성도 너의 성을 쓰지 그러느냐고’… 비아냥 거리기만 했다.
남편과 내가 함께 만들긴 했지만 솔직히 아이는 오롯이 내가 낳았다. 모든 고통을 겪어낸 것은 나 혼자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심양면 모든 지원은 친정에서 받았다. 그런데 왜 남자의 성을 따르고 심지어 돌림자까지 써서 남자의 아이인 것을 증명하려고 하는 것이지? 만약에 양가 어른들이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아름다운 전통이라면 우리 부모님에게는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으신 거지? 게다가 심지어 아이를 낳는 당사자인 나에게는 왜 먼저 양해를 구하지도 않고 당연하다는 듯 돌림자까지 쓰라고 요구하는 것일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남자가 밖에서 기다리다 아이를 데리고 나가 여러 사람 앞에 자랑을 한다. 그 사이 산모는 과다출혈로 마침내 죽었다. 중세 유럽 시대의 영화 속 장면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이런 걸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누가 번다’라고 하는 건가. 나는 그 모든 것에 대하여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생각해보게 되었다. 도무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 이름, 대체 엄마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지? 아무 의미가 없다. 나는 나의 권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댁과의 불협화음으로 나날이 부부싸움만 가중되던 어느 날, 남편이 적극적으로 해외 취업을 알아보기로 결심을 했고 기적처럼 우리는 한국 땅을 떠나게 되었다. 출국 준비를 위해 아이 여권을 만들기 전 남편에게 진지하게 얘기했다.
“엄마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어? 오빠는 이 이름이 좋아? 나는 정말로 안 되겠어. 이 이름으로 평생 살게 하고 싶지 않아. 지금 아이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평생토록 당신을 원망하게 될 것 같아.”
그러자, 그동안 수도 없이 싸우며 아예 성을 갈지 그러냐고 화만 냈던 남편도 속으로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지
“나도 고민을 해봤지만 아무래도 바꾸는 게 좋겠어, 영어 이름을 생각해서도 그렇고…”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의 이름을 개명하기 위하여 법원으로 향했다. 불과 몇 주만에 아이의 이름은 우리가 원하는 예쁜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그 간의 쓸데없는 마음고생에 눈물이 났다.
시댁에는 남편이 어머님께 먼저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님은 아버님한테는 시간을 좀 두고 천천히 말씀드리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나고도 어머님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삼 년이 지나고 마침내 어느 날, 여전히 아이의 바뀐 이름을 모르시는 아버님은 알고 계시는 그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시며 메시지를 보내오셨다. 왜 아버지께 사실대로 직접 말을 못 하는지 남편이 이해가 되지 않고 어머님의 태도는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남편에게 얘기했다.
“이번 달 안으로 말씀드리지 못하면 내가 직접 얘기할게. 애 이름 가지고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뭐 하는 거야. 나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어.”
그리고 남편은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아버님께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메시지에는 일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대답이 없으시다. 물론 아이를 찾는 연락도 없으시다. 남편은 그 일로 마음이 많이 불편해 보이지만 원래 아버지와 잘 연락하는 사이가 아닌지라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는 눈치다. 어머님과만 따로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다. 아버님도 어머님께 따로 보내드린 사진만 보고 계시겠지.
가부장제라는 이름 하에 먼저 공격을 당한 쪽은 나다. 아프기도 내가 먼저 아팠다. 남편 말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결국 아버님만 외로우실 텐데 하루빨리 마음을 푸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