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년 지기 베프이자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또 다른 주인공인 초특급 울트라 알파걸 M.
그녀는 오랜 시간 나와 동고동락한 불타는 전우애를 가진 친구다. 마침내 그녀가 운명의 반쪽을 만났다.
그녀가 데려온 남자는 첫눈에 훤칠한 키에 귀티 나는 외모를 가진 꽤나 괜찮아 보이는 남자였다.
다만 외모와는 달리 여기저기 메워야 할 구멍이 좀 많기는 한 남자였다.
아들이 셋인 집의 장남인 남자의 시부모님은 상견례에서 대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들 셋을 다 유학 보내느라 모아둔 재산이 없어요. 그러니 집을 얻는 데는 보태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기대는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 네…”
애초에 바란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고 말하는데 이렇게 당당할 건 또 뭐야. 아들 가진 부심인건가. 저쪽 부모님의 어이없는 태도에 황당했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결혼이고 건건이 문제 삼아봐야 좋을 것이 없으므로 ‘습습후후’ 심호흡을 하며 맘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시댁의 지원은 한 푼도 없이 시작하게 된 결혼. 게다가 남자 역시 알뜰살뜰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던 약간의 허세 기를 품은 캐릭터인지라 결국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인 부담은 온전히 그녀와 그녀의 친정 부모님이 감당해야 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이어 임신과 출산을 한 그녀는 맞벌이 워킹맘이 되었다. 그녀의 연봉이 남자보다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출산 후 채 육아휴직도 다 쓰지 못하고 바로 복직을 해야 했다. 자연스레 아이의 육아는 오롯이 친정 부모님의 몫이 되었다. 그런 그녀는 만날 때마다 내게 억울한 심경을 토로하곤 했다.
“왜, 우리 엄마 아빠만 이렇게 고생하는지… 정말 미안해 죽겠어. 우리 부모님께 죄인이 된 심정이야. 이모님은 하루에 네 시간만 오시니 그거로는 감당도 안돼. 이모님 월급에 엄마 용돈도 드려야지, 생활비에 집 대출금까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야…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나 모르겠어. 가끔 주말에 시부모님한테 애 좀 봐달라고 전화하면 골프 약속 있다고 봐주지도 않으셔. 집 얻을 때부터 한 푼도 안 도와주시더니… 너무 얄밉지 않니? 아휴 내가 결혼은 왜 해가지고…”
아직 결혼 전이었던 내겐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결혼 생활의 현실이었지만 속으론 나도 저런 시댁을 만나서 고생하며 살 바에는 ‘차라리 속 편히 혼자 사는 게 백 번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속 좋은 친정댁에 기대는 것이 당연시된 남자와 시댁의 뻔뻔한 무임승차로 보여 덩달아 많이 속상했다.
어느 주말, 시댁에 방문한 그녀. 어머님이 과일을 깎아 오라고 하셨단다. 평소 과일 깎는 데는 그다지 재주가 없었던지라 되는대로 그냥 깎아서 과일을 내어간 과일을 보고 시어머님이 하시는 말씀,
“아니, 얘야 과일이 이게 뭐야, 너 과일 안 깎아봤어?”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들끓던 마그마가 폭발하고야 만 그녀,
“어머님, 제가 과일까지 잘 깎아야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