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에 동갑을 만나 결혼한 K.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주인공들 중 가장 갑자기 빨리 결혼하게 된 친구다. 소개팅으로 만나게 된 동갑인 남자 친구의 학벌이 궁금하다고 했던 그녀는 결국 나중에는 학벌은 몰라도 괜찮을 만큼 그가 좋아졌다며 목회를 하시는 시부모님마저도 너무 훌륭하셔서 존경한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결혼식을 잘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첫 명절이 다가왔다.
“아 나 진짜 되게 짜증 나네, 왜 명절에 시댁부터 가야 해?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닌데? 우리 엄마 아빠도 나 기다리잖아, 우리 집은 딸밖에 없는데 우리 엄마 아빠 외로워서 어떡해? 나 결혼하고 처음으로 남편하고 싸웠잖아 그래서. 아니 왜 명절에 우리 엄마 아빠는 외롭게 보내야 하냐고, 무슨 딸 가진 죄인이냐고 이게!!”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솔직히 내게 닥친 문제가 아니라 당사자였던 내 친구만큼은 화가 나지 않았었다. 그저 괜히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은 생각에
“그럼 올해는 시댁 먼저 갔으니 내년에는 친정 먼저 가자고 해봐!”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도 결혼을 했다.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도 흔히들 말하는 그런 여러 가지 다툼이 있었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그때 K가 했던 말이 떠올라 남편에게 얘기했다.
“오빠, 알지? 나는 남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에 당연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들이 많아. 한국의 결혼문화도 그렇고. 명절에는 왜 시댁부터 가야 한다고 생각해? 제사 때문에? 그럼 만약에 우리 집에 아들이 없는데 우리 집에도 제사를 지내야 한다면 어떡해? 나는 우리 결혼하면 한 해는 시댁 먼저 한 해는 친정 먼저 이렇게 공평하게 갔으면 좋겠어. 부모님께도 오빠가 잘 말씀드려봐~”
“... 어… 어…”
떨떠름하고 애매모호한 당시 남자 친구였던 남편의 대답.
그리고 나는 결혼 후 한국에서 딱 세 번의 명절을 맞이하였고 그중 두 번은 극심한 입덧과 출산으로 시댁은 가지도 못했고 나머지 한 번은 백일도 안 된 아이를 안고 명절 아침 당일날 시댁을 먼저 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는 멀리 떨어져 살게 된 덕에 명절에는 친정과 시댁에 동시에 안부를 전한다.
고맙게도 남편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지 꼭 우리 집에 먼저 연락을 해준다. 그것이 고마워 나도 시댁에 먼저 안부를 여쭌다. 만약 한국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과연 해마다 번갈아 순서를 바꿔가며 방문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