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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tto Mar 21. 2021

이런 삶, 저런 삶

이번 명절은 조용히 지나갔나 했더니 어김없이 여동생에게 장문의 카톡이 왔다.

‘언니 어제 엄마가 나한테...’로 시작하는.

연극치료와 심리치료를 겸하며 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내 동생은 어려서부터 조금 남달랐다. 소위 말하는 '끼'가 충만했었는데 온몸으로 흘러대는 그 끼를 발산하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하던 아이였다. 우리가 아주 어렸을 때, 한 번은 저녁 식사자리에서 어떤 어른이 나에게 노래를 시켰다(이런 어른은 지금도 정말 싫다). 유난히 숫기가 없었던 나는 순간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동생이 구원투수처럼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제가 할게요!" 라며 찰지게도 노래를 불러대더니 곧이어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아냈다. 그런 거침없는 내 동생이 엄마는 기특한 한편 걱정도 되었었던 것 같다.


어렸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을 줄 아는' 동생은 자라는 내내 자신의 꿈과 현실을 타협해오며 살아왔다. 결국 부모님의 뜻대로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우여곡절 끝에 졸업은 했지만 결국에는 과를 전향하여 지금의 예술경영학과에서 못다 한 자신의 꿈을 펼쳐가는 중이다. 동시에 생계를 위해 엄마의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여 일도 하고 있다. 거의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모녀가 함께하다 보니 둘의 갈등이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


최근에는 다행히 동생이 심리치료사의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을 막아내기도 하지만 동생이 받는 스트레스가 꽤 심각해 보인다. 이따금씩 나에게 엄마와 통화한 내역을 녹음하여 보내오거나 카톡 메시지를 캡처해서 보낸다. 그러면 나는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오늘 아침에도 일어나니 동생에게 장문의 카톡이 와있었다.

“언니 엄마는 ‘집착 심리 경계선 장애’인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엄마가 좀 알고 변했으면 해서 어제 이 글을 보내주었는데 그 뒤로 엄마가 하루 종일 연락두절이야.”


동생이 보내준 내용을 읽어보니

'상대에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워하여 생기는 집착'이라고 되어있었다. '동시에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사랑의 정반대의 모습인 비난, 경멸, 증오 등의 극단적 표현을 한다'라고 되어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가 많은 우리 엄마, 딸한테 ‘심리적 장애가 있어 보인다’는 말을 돌직구로 들어버렸으니 꽤나 상심이 컸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유리 멘털인데 부서져버리면 어쩌나... 게다가 이제는 예전만큼의 기력도 없어 회복 속도도 느릴 텐데... 걱정이 되었다.


“ㅇㅇ야, 나도 엄마가 상담치료를 받기를 누구보다 바라고 있어. 그렇지만 지금의 상태에서 저렇게 해버리면 엄마가 되려 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아. 너무 모든 사람을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지는 마. 그럼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환자 같잖아. 그냥 이것도 삶이야... 이런 삶, 저런 삶...”라고 말하니 동생도 곧 수긍했다.


엄마를 저렇게까지 힘들게 한 것은 무엇일까. 엄마의 성장과정에서 시작된 심리적 결핍이 결혼 후 육아에도 반영되어 우리에게까지 대물림되어 온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또다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순간. 

'그냥 삶이야...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는 거지...'라며 받아들이기로 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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