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 시절, 친하게 지내던 예쁜 언니 J. 월요일 아침, 언니가 복도 끝에서부터 우아하게 걸어오며 인사를 한다.
"언니~ 어제 시댁은 잘 다녀왔어요?"
"응, 어제 우리 시아버지 나한테 봉변당했잖아"
둘째를 출산한 지 채 석 달이 지나지 않아 지방에 있는 시댁으로 내려갔다.
마침 시누이네 식구들도 와있었다. 시누이(남편의 여동생) 역시 나와 비슷하게 둘째를 출산한 직후였다.
가족끼리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갑자기 시아버님이 운을 떼시며 하시는 말씀,
"지연아(시누이), 너는 이제 됐고 애미야 너는 딱 아들 하나만 더 낳아라"
"............"
나는 출산한 지 백일도 안된 몸도 안 풀린 산모다. 미역국 먹고 안 나오는 젖 짜내기도 바빠 죽겠는 판이다. 옆에는 백일도 안된 갓난쟁이가 울어대고 있고 벌어진 관절은 다 붙지도 않아 놋숟가락 하나 들 때도 힘이 들어간다. 밥 먹느라 앉아있는 지금도 진땀에 식은땀에 힘들어 죽겠다. 그런데 뭐라고? 나보고 애를 또 낳으라고?
갑자기 서러움에 눈물이 핑~ 묵은 감정이 복받쳤다.
'와 정말 너무하네 진짜. 내가 애 낳는 기계인가, 애 낳으러 시집왔나.'
우리 엄마, 아빠는 결혼할 때 나보고 애는 낳을 거면 딱 하나만 낳으라고 했다.
그런데 시아버지가 지금 자기 딸한테는 고만 낳으라 그러면서 며느리인 나한테는 하나 더 낳으란다.
재작년 봄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리고 여름에 미국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조건으로 둘째를 출산하기로 남편과 합의하여 낳은 둘째다. 아이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내게도 동기부여와 보상이 주어져야 둘째를 낳고 혼자 고생할 때 덜 억울할 것 같았다. 첫째를 낳고 내가 대학원에 진학하는 바람에 육아는 온전히 친정엄마의 몫이 되었다. 엄마는 그런 첫째와 하루 온종일 씨름하시다가 반년만에 폭삭 늙으셨지만 딸이 공부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길 바란다고 하셨다.
지방에서 자수성가한 시아버지는 중견 중소기업의 오너이다. 그래서 첫째를 낳을 때도 둘째를 낳을 때도 꽤나 값나가는 것들로 나를 치하해주셨다. 하지만 평소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면 사고방식이 우리 부모님과는 딴판이다. 나를 정말로 (X)치게 하는 것들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끔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야, 그래도 너네 시아버지는 애 낳았다고 그런 거라도 해주시잖아, 이 부러운 것아! 우린 국물도 없어~ 행복한 줄 알아~" 라며 나의 얘기는 묵살되곤 했다. 가끔은 내가 '돈에 영혼을 팔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마침내 오늘, 자기 딸한테는 그만 낳으라고 하고 나한테는 하나 더 낳으라고? 정말 진심 개빡쳤다.
밥을 먹다 말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버님, 지금 저 남의 집 딸이라고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순간 싸해진 밥상 분위기. 모두 밥상만 쳐다보고 있다. 그 길로 자는 애를 들처업고 서울행 KTX에 올라탔다. 그날 우리 시아버지는 식사하시다 말고 갑자기 나에게 봉변을 당하셨다.
이후로 지금까지 시아버님은 나에게 다시는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수고로 얻은 MBA 학위로 시아버님이 우리 부부에게 물려주신 회사에서 이사 노릇하며 잘 지내고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여전히 그때의 그 서러움이 해갈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생 잊지 못하겠지. 지금도 가끔씩 툭툭 내뱉으시는 말씀들이 나를 불편하게 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