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쎄미 Nov 08. 2020

세상에서 제일 예쁜 당신 몰래

엄마는 요리는 참 잘하신다. 몇십 년간 매일 먹어온 밥인데 아직도 "어떻게 이렇게 맛있지?" 소리가 절로 나오는 게 스스로도 참 신기하다. 아무리 맛있다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와도 바깥에서 식사할 일이 잦아지면 어쩔 수 없이 담백하고 깊은 엄마 밥이 그리워진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음식을 앞에 두고도 조미료를 포기 못하시는 우리 아빠는 꼭 엄마 몰래 국에 조미료를 한 숟갈 타시곤 혹시나 들킬까 얼른 휘휘 저어 증거를 인멸하신다. 구박 아닌 구박을 하면 "너네 할아버지가 이렇게 드셔서 그래~"하고 스리슬쩍 넘어가는 게 예사 구렁이가 아니시다. 아니, 엄마랑 사신 게 몇 년째인데 아직도 할아버지 핑계를 대시나.


유난히 일찍 일어나시는 아빠에게 주말 아침은 원하는 대로 조미료 찌개를 끓여 드실 수 있는 귀한 날이다. 새벽 4, 5시면 일어나서 이미 몇 시간의 아침 산책을 마치고 오신 아빠와 달리 이제 막 일어난 가족들이 벌써 밥이 먹힐 리가 없다. 그러면 아빠는 아주 자상한 목소리로 "당신은 더 자. 내가 알아서 차려먹을게, 신경 쓰지 마~" 하시고는 얼른 냄비에 물 붓고, 된장 한 스푼 고추장 한 스푼, 감자 숭덩숭덩 썬 것, 양파 큼직큼직하게 썰어 넣고, 호박 있으면 호박도, 고기가 있으면 고기도 약간. 그렇게 얼큰한 냄새를 풍기며 팔팔 끓는 찌개를 엄마는 날카로운 매의 눈으로 흘겨보신다.


"조미료 넣지 마! 건강에 안 좋으니까 넣으면 안 돼! 절대 안 돼!"   

"아이, 그럼. 안 넣지~"


그 순간 대충 틀어놓은 티비에 엄마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왔다.

 

"어쩜 저렇게 예쁘고 노래도 잘해? 엄마는 저 가수 참 좋더라."

"당신이 더 예뻐."

"에이, 무슨 소리야!"

"아니야, 진짜로 당신이 더 예뻐. 세상에서 제일 예쁘지! 가서 다시 봐봐, 당신이 훨씬 예쁘지!"


그리고 나는 보았다.

엄마가 수줍어하며 잠시 한눈 파신 그 순간, 티스푼에서 떨어지는 탐스러운 붉은 가루들을..


 

세상에서 제일 예쁜 당신 몰래


P.S. 그냥 조미료라고 통칭하긴 했지만 다들 아시죠? 그 붉은 가루..



손이 빨간 이유 : https://brunch.co.kr/@antares9010/53





매거진의 이전글 역시 나들이 갈 땐 목장갑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