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좋은 대로 (계획하고) 살자. 그 결과는 신이 결정한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에 인정하자)
내가 좋은 대로 살면, 그 결과가 내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고, 무언가를 결정하기 더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우려와 달리 내가 원하는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면 그렇게나 힘들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닌가. 지금까지 생각보다 내가 해왔던 큰 결정은 (대학/취직/대학원 유학) 말고는 없었다.
결과는 신이 결정한다는 말이 가슴에 쿵하고 와닿았더라도, 그 한 마디로 내 마음이 고민 없이 편해지면 너무 좋겠지만 생각이(인생이)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2017년 여름, 친한 친구(상담 전공)의 추천으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2023년도 11월까지 같은 선생님께 상담을 이어받다가, 자꾸 같은 일로 반복하면서 힘들어하는 나한테 질려서 상담을 중단하고 병원을 좀 더 집중해서 다녔었다. 그러다 최근 며칠 동안 도저히 이렇게 살 수는 없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다른 상담을 다녀보려고 다다음 주에 예약을 했다.
어제 그 친구와 새로운 선생님께 상담을 다시 받기로 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전 상담 선생님과 어떤 이야기를 주고받았었는지 떠올려봤다. 그 당시에 나는 '이야기 배출구'가 필요했었다. 해결하고 싶고, 궁금했던 어느 한 사건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값을 지불하니) 마음 편하게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할 사람 이 필요했었다. 그래서 그 당시, 나는 일주일을 지내며 힘든 순간이 오면 '이제 곧 상담샘 만나서 이야기하면 되니까' 하는 생각에 일주일이 버텨지는, 일주일살이 인생을 지냈었다. 그때 내가 상담샘께 많이 했던 이야기가 '샘, 저 샘이랑 평생 상담받을 수 있는 거 맞죠? 저 나중에 상담 끝내야 된다고 하실 거 아니죠? '였다. 그만큼 상담샘이 상담을 종료하자고 할까 봐 불안했다.
(친구) 상담 선생님께 하는 이야기랑 친구나 가족들에게 하는 이야기가 달라?
(나) 응, 달라. 깊이가 다른 것 같아. 상담샘한테 100 정도 할 수 있으면 친구한테는 최대 70 정도인 것 같아. 그리고 오랜만에 만나서 내 고민, 힘들다는 얘기하기가 쉽지 않더라고.
그런데 요즘은 상담을 안 하고 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이야기하면서 생긴 에너지가 일주일이 안 간다. 그러면서 아 내가 그냥 얘기하고 마음이 잠시 풀리는 걸로는 상담의 효과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매일 상담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돈도 많이 들어서 그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공휴일이나 오늘 같은 설날 연휴에는 문 닫기 마련인데, 이걸 못 버티겠더라.. 친구가 상담의 목적 중 하나가 '독립'이기 때문에, 내가 받았던 상담이 옳다 그르다 할 것은 아니지만, 이번 상담을 통해서는 내가 뭔가를 더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어제 하루 종일 우리 대화의 주제였던 '내가 끊임없이 신경 쓰고 있는 그 타인의 시선, 내가 신경 쓰는 그 타인은 누구인가. 진정 타인인가. 내 마음의 목소리는 아닌가. 내가 가장 나를 비난하고 인정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에 대해 한 번은 이야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친구) 방학이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으면 안 돼?
(나) 되긴 하지. 그런데 무기력해 보이잖아. 다른 사람들은 돈 벌고 있는데 나는 열심히 살고 있지도 않고. 그래서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 그게 그나마 내 생각을 분산시킬 수 있어서 편해. 이전에는 체력이 있으니까 영어공부나 요가를 하면 그거에 집중이 돼서 마음이 편해지긴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 체력이 달려서 그런 건지 요가를 해도 집중이 안되고, 오히려 졸리니까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집중도 안되고, 생각이 더 많아져.
(친구) 그럼 요가를 쉬면 되잖아?
(나) 요가를 쉬면.. 안 될 것 같아.
(친구) 뭐가 안될 것 같은데?
(나) 예를 들어서, 내 주변 사람들은 보통 내가 7시-8시 20분 사이에 요가를 한다고 알고 있단 말이야. 근데 그때 누군가 '요가 중?'이라고 카톡이 왔는데, 내가 요가를 하고 있지 않아서 그 카톡을 확인을 바로 하게 되는 날이 있거든. 그러면 바로 답장을 못하겠어. 8시 30분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답장하게 돼.
(친구) 응?? 뭐라고??? 왜??? 그냥 아니 오늘 요가 안 해라고 하면 되잖아!
(나) 그러면 되는데.. 못하겠어. 그냥 그 친구와의 약속을 깬 느낌이야. 내가 요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요가를 안 하고 있었으니까.
(친구) 아아아 그게 무슨 말이야. 그 친구랑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그냥 네가 요가 안 한 너 자신을 못 견디겠는 거 아니야???? 요가 안 하고 있다고 말하면 친구가 뭐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나) 음 그냥 거기까지는 모르겠는데, (그 친구가 아는 루틴대로 안 해서) 미안하기도 하고 (내 계획을 지키지 못해서) 부끄럽기도 해.
어제 여러 주제들에서 이런 대화 패턴이 몇 번 오고 가다가 친구가 소리를 질렀다.
그게 뭐냐고. 으휴 너무 복잡하다 인생이!!!
그러게 나도 너무 복잡하다!! 이건 예시 하나일 뿐이고 내 머릿속에서는 이런 패턴의 사고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연락하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럼 나의 조급함은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연락을 기다리면서 (내가 당황할 질문을 할 거면) 연락이 안 왔으면 좋겠는 마음이라고 해야 되나. 노르웨이 가기 전에는 이게 어렸을 때 엄마의 목소리인 줄 알았다. 그 목소리가 내면화돼서 엄마가 지금은 더 이상 잔소리 안 하시지만 저절로 내가 열심히 살고 있지 않다고 느끼면 뜨끔뜨끔하게 되는 거. 그래서 엄마랑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나도 이런 압박감에서 조금은 멀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노르웨이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작정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도 안 만나고 살 수 있는 곳에서 나는 여전히 1) 매일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쓰고 2) 매일 영어 공부 - 스터디를 하고 3) 매일 운동을 했다. 그리고 추가로 깜깜해지기 전에 들어오지 않으면 무서웠다. (문제는 노르웨이는 겨울에 2시만 돼도 깜깜해지기 때문에, 1시부터 이미 초조했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랬 다면, 그때 나는 누구랑 있었는가. 아무랑도 없었다. 나 말고는. 그럼 나를 다그치는 부끄럽다고 느끼는 목소리는 내 목소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