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왜 살아 ? 05화

왜 살아 4. 미안해 - 울면 다야?

by 우주먼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랬 다면, 그때 나는 누구랑 있었는가. 아무랑도 없었다. 나 말고는. 그럼 나를 다그치는 부끄럽다고 느끼는 목소리는 내 목소리인가.


이 목소리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만약에 내가 나한테 하는 말인 거면 왜 나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 복잡함 속에 살게 되었는지, 상담에서 해결해보고 싶다. 한 가지 해결할게 생겨서 정리되면 내가 아니지. 오늘은 또 다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려고 해서 기록으로 남겨두려고 한다. 그건 바로 '죄책감'이다. 새로운 감정은 아닌 것 같다. 지난 글에서 내가 그동안 해오던 루틴을 하지 않으면 (대상 없는) 죄책감을 갖는다고 했었으니까.


요즘 내가 갑자기 울컥하고,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하자 부모님께서는 걱정이 되셨는지 나의 감정을 많이 받아주고 계신다. 특히 엄마가 이번 연휴 동안 나랑 집에 있으면서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많이 하셨다. 중2를 가르치더니 중2처럼 사춘기가 온 것 같은 딸의 감정 기복에도 엄마는 흔들림 없이 있어주셔서 고마웠다. 그러면서 나는 문득 무서웠다. 지금은 나의 감정에 매몰되어 이렇게 나만 신경 쓰고 있는데, 혹시라도 부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져 더 큰일이 오면 그때 돼서 내가 후회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 되면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 같은 마음,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진정이 안 되는 내가 너무 싫었다.


최근 3개월 동안 이모티콘을 그리고 싶어서 연필로 끄적거렸다. 그림을 그리는 몇 분은 집중이 잘 되는 느낌이라 아이패드 살까 말까 고민을 한 달 정도 한 것 같다. 그런데 가격이 80만 원 조금 넘으니 손이 부들 부들 했다. 사면 살 수 있는 가격이지만, 나를 위해서 그만큼 쓰는 건 아깝다 해야 되나. 그리고 분명 내가 돈 쓰는 거 손 떨려 할거 아니까 부모님이 또 사주실 것 같았다. 어제도 내가 혼자 애플에 방문했다가 다시 돌아오는 걸 보고 오늘은 아빠와 가서 결국 샀다. 그런데 사고 나니 또 마음이 안 좋았다. 괜히 죄송하고, 힘들다고 징징대서 울어서 집안 분위기를 안 좋게 하고, 부모님을 걱정하게 해서 어떻게든 원하는 걸 받아내는 내 모습이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결국은 원하는 걸 손에 넣는. 그럴 거면 그냥 웃으면서 행복하게 보내다 사면되지. 꼭 사람 죽네 마네 해서 부모님 마음에 비수를 꽂아 놓고 아이패드를 받아내야만 속이 시원했는지. 부모님께 너무 죄송하다.


이런 모습은 사실 최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억나는 어렸을 때 나의 모습 중 하나는, 초등학생 4학년쯤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엄마가 오빠랑 같이 일로 미국을 가셨던 상황이라, 아빠랑 나만 집에 있었다. 엄마 껌딱지였던 나는 4학년이나 됐음에도 엄마가 떠나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엉엉. 아빠가 옆에서 어떻게든 기분 좋게 맛있는 거 해주고, 마트랑 백화점 가서 원하는 거 사준다고 해도 엉엉 울었다. 딸바보인 아빠는 짜증 한 번 안 내고 다 받아주셨다. 10일 후 엄마가 올 때가 되니 아빠한테 또 너무 미안했다. 아빠도 일하면서 나 봐주셨던 건데 하루종일 울고 아빠 싫다고 엄마가 좋다고 소리치는 딸이라도 그렇지 얼마나 짜증 났을까. 그래서 나는 엄마가 올 때 즈음에는 아빠한테 미안해서 울었다...(어쩌라는 거지) 엄마가 온 다음에도 아빠랑 엄청 좋았다면서 아빠한테 편지 쓰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때도 아빠가 나를 잘 보살펴 준 것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죄책감에 많이 울었다.


죄책감이라는 감정과 함께 오는 건 항상 눈물이다. 나는 눈물이 정말 많은 편이다. 초등학생 때인가, 내 롤링페이퍼에 누군가가 '그만 울어'라고 적었었다. 사실 상대방이 잘못했는데도, 상대방이 울면 내가 더 이상 그 잘못에 대해 언급하기 되려 미안해지는 게 눈물의 힘(?)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미안해하면서 끝내는 울었다. 입장 바꿔 생각하면 제일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눈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행동. 그래서 나는 내가 이런 모습일 때 더 용납하기가 어렵고 화가 나는 것 같다.


어제는 또 밤에 친구가 만나자고 해서 급히 만나러 가는데 엄마한테 미안했다. 연휴 내내 우울해해서 엄마가 옆에서 많이 보살펴줬는데, 기분이 좀 나아졌다고 친구 만나러 슉하고 나가는 게 미안했다. 엄마한테는 원래 편하게 괴로워하는 모습 보여주다가, 친구들 만날 때는 괜찮고 멀쩡한 모습으로 나가는 건가. 다들 그러나. 왜 이렇게 이게 미안한지. 그래서 친구 만나러 가는 길 내내 울컥한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나 나름 친구네 집에 즉흥으로 가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화요일에 친구를 만나보니 환기가 되면서 마음이 좀 나아졌고,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제안을 받았을 때 하고 싶은 대로 하기. 나름 마음먹고 한 거였는데 말이다.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지. 연휴 동안 내내 나의 기분을 맞춰준 엄마한테 내가 기분 좋은 상태일 때 잘해야 하는데부터 해서 마음이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는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에 아침에 좀 더 일찍 챙겨서 나왔다. 그래서 부랴부랴 연락도 안 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미안했다. 어제 내가 그렇게 가버린 것 때문인 줄 알고. 그런데 그건 아니었다. 아침에 내가 어떻게 할지 연락을 하기로 했는데 깜빡하고 나와서 엄마는 아침에 내내 나를 기다리다가 다음 일정에 영향을 줘서 그런 거였다. 오늘 아침에 어떻게 할지, 언제 집에 갈지 오늘에 집중을 하면 되는데, 어제 미안함에 사로잡혀 오늘 집에 일찍 가야 된다에 초점을 두다 보니 오히려 오늘 연락해야 할 것을 놓쳐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한 느낌. 어렵네..


이 정도 나이되면, 친구랑 놀다 늦게 들어오고 이런 건 큰 문제가 아닌데, 왜 이렇게 뭐 하나하나 약속을 잡을 때마다 신경 쓸 일들이 많고 미안한 감정이 들다 (이게 뭐가 그렇게 미안해해야 하는 일이야!) 혼자 억울해서 짜증도 났다가. 진짜 사춘기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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