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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되었다

브런치 첫글을 미약하게 시작합니다. 

by 웃는신디 Mar 17. 2025

갈피를 잡지 못하는 시간이 몇 주째 흐르고 있다. 업무와 관련된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그 일은 하고 싶지 않은 듯 건드리기만 해대고 있다. 괜스레 이것저것, 이일 저일로 빙빙돌다 핑계처럼 대청소를 시작했다. 대청소는 내가 있는 나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청소를 하고 나면 내가 나를 사랑하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이 우울하거나 처질 때 나는 대청소를 한다.   


예전처럼 하룻밤에 다 해내진 못한다. 일까지 하며 남편방, 옷방, 목욕탕, 부엌을 지나 내 방 청소에 이르기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소요됐다. 드디어 마지막 내 방을 정리할 차례이다. 


처음엔 방 정리를 위해 수납 정리템을 몇 개 구입하려고 했다. 그러나 인터넷 살림템을 아무리 뒤져도 내 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것이 없었다. 뭐가 문제일까? 이제 더 이상 책상 정리, 소품 정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이 보였다.  이 방은 전체적인 프레임부터 다시 짜야하는 방이다.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정리에 한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무얼 해야 할까? 내 방에 있는 가구들은 모두 수납이 잘 되지 않는 얻어온 가구 몇 개뿐이다. 남편이 만들어준 기이하게 기다란 원목 책상, 시누이가 쓰다가 준 tv장과 서랍장. 지인이 쓰다 준 낮은 책꽂이. 살림살이에 비해 수납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보였다. 수납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단출한 가구 위책이며 그림도구들과 오일병들이 수북이 쌓이고, 여기저기 나뒹군다. 그런 짐들은 정리하고 돌아서면 며칠 안에 다시 어수선해져서 정리한 티도 나지 않는다. 


어떤 가구를 사야할지 탐색하며 방안 여기 저기를 다시 본다. 방을 제대로 보는 것이 처음이라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인다. 방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방이 필요한 것을 알아준 적이 없었다. 방에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빼야 할지 구조적인 시스템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주어진 그대로, 그 안에서 깨작깨작 거리며 살아왔다. 무려 20년을. 


집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고 하던데, 내가 살아온 의식의 수준과 혼란함이 방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다양한 나의 정서들과 호기심과 게으름들이 다양한 물건들로 쌓여 내 삶의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의도를 가지고 방을 정리해 본 적이 없음을 알아차린다. 그저 주어진 상태에서 가끔 깔끔히 정리하고 청소기나 돌리면 다인 줄 알았지, 방 정리를 위한 구조와 짜임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수납이 가능한 가구를 사기로 했다. 3일쯤 인터넷을 뒤지다 보니 내가 사야 할, 사고 싶은, 필요한 가구가 무엇인지 감이 좀 잡힌다. 엄청난 에너지 소모였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시간 낭비다. 그냥 눈감고 지낼지언정, 이런 낭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이번에는 꿋꿋하게 끝까지 해냈다. 그리하여 마침내 내 방에 필요한 가구 두 개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수납공간이 다양하면서, 필름지가 벗겨지는 바람에 마음 상하지 않을 정도의 가격대로. 


이제 이 나이라면 더 이상 가구를 바꿀 일은 없을 터이니, 막무가내로 구입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어쩌면 이 또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현인지 모르겠다. 그동안 나를 위해 좋은 것, 비싼 것, 가치 있는 것, 편안한 것, 제대로 된 것을 사주지 못했다.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런 내 마음을 충분히 존중해주고 싶었다. 좀 비싸도 지르자. 


그렇다고 비싼 고급가구를 사겠다는 것은 아니다. 몇몇 개는 정말 가격 따지고 싶지 않을 만큼 탐나고 아름다웠지만, 나의 필요를 충족해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질질 흐르는 침을 닦으며 엑박을 눌러야 했다. 수납공간이 충분하고 다양한 형태이면서 자연소재의 가구면 충분하다.  


오늘 가구를 장바구니에 담자마자 그토록 외면하던 브런치 사이트에 들어왔다.  작가 등록을 한지 거의 1년 만이다. 게다가 이렇게 모닝페이지처럼 제멋대로 쓰는 글일망정 한편을 작성하고 있다니.  


지난 한 달 동안 그렇게 망설이고 멈칫거리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처럼 이리저리 뒤척거린 이유가 글을 쓰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나보다.   


당신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딱 한 가지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그 질문에 내 안에서 '글쓰기'라는 답이 나오는 걸 알고 스스로 놀랐다. 내 안에 글쓰기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걸 나도 몰랐다. 글로 쓰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들은 순식간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라진다. 글쓰기도 타이밍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생각들은 잠깐만 머뭇거려도 허공 중에 산산이 흩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발견, 알아차림들, 의식의 확장, 깨우침들과 그에 대한 놀라움들. 그 많은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막상 글을 써보려 하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 가지 위안 삼는 것은 그 모든 것들이 내 무의식에 차곡차곡 저장되었을 것이라 믿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제 그 기발하고 찬란한 존재의 깨우침 들을 글에 담아 표현해내고 싶은 것일까? 그때가 바야흐로 목전에 이른 것일까? 내 삶에 도움이 되었던 그 일들이 세상에 내놓아도 되게끔 된 것일까? 


아직 가구가 도착한 것도 아니고, 내 방은 여전히 어지럽고 정신없는 형편이다. 아직 브런치 글쓰기의 시스템도 모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우선 내질러보자. 모닝페이지 쓰듯, 의식의 흐름대로. 내 무의식이 말하는 대로. 이것으로 시작을 삼아보자. 누가 뭐라해도 괜찮다. 나의 시작은 미약해도 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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