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활자모양으로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현까지 약 3,000KM다. 영토면적은 200개국 중 60위지만, 영해면적은 200개국 중 4위다. 난 이 사실에 깜짝 놀랬다. 영해는 전세계의 무역을 잇는 최고의 교통망이자 인류의 마지막 유전이다. 외료품에서 반도체까지 차세대 핵심자원이 숨겨진 보물창고이다보니 어느 나라보다 일본이 해양영토에 집착하지 않나 싶다. 그 대표적인 예로, 도쿄로부터 1,700KM 떨어진 오키노토리시마. 만조일 때 해수면 위로 1미터 돌출된 무인도인데 일본 정부는 배타적경제수역을 고려하여 콘크리트로 공사해서 일본의 해양영토로 만들었다. 이는 일본국토면적보다 넓다.
조금만 더 가면 총 맞아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 분쟁 중인 섬, 북방영토. 이 취재를 위해 홋카이도의 네무로로 향했다. 현장감 있는 취재를 위해 내가 제안해서 배를 타긴 탔지만, 평생 경험하지 못한 추위에 욕이 절로 나왔다. 칼바람을 맞으며, 어느 정도 달렸는지 모르겠지만, 어선 너머로 유빙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신기 그자체였다.
카메라선배는 열심히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고, 우릴 안내해준 선장에게 북방영토에 대한 일본인의 진심과 희망사항에 대한 인터뷰도 무사히 마쳤다. 그런데 갑자기..
선장: 더듬거리면서 더! 더! 이상 배타고 들어가면 총맞아 죽어요
김코디: 총에 맞는다구요. 자세히 알려주세요.
선장: 계속가면 러시아 해역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러시사군 시찰선이 총을 쏴요. 예전에 지인이 총에 맞은적이 있어요.
난 그의 얘기가 사실인지 농담인지 판단할수없었지만, 너무 진진해서 사방을 살피면서 몸을 낮추고 선장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했다. 그는 냉큼 배를 돌려 항구쪽으로 무사히 복귀했다.하마터면 우린 저세상에 갈뻔했다.그날 스탭들은 저녁에 숙소 근처에서 따뜻한 청주를 한잔하며 서로 위로했다.
M본부의 <섬전쟁>에 따르면, 영토라고 하는 것은 세계역사를 관통해 봤을때, 영구불변의 고정된 영토는 없다. 러일영토분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하는데, 일본과 러시아가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면서 남사할린과 쿠릴열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이 터졌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때 유럽에서는 독일과 전쟁을 해야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스탈린의 입장에서는 전선을 2개로 펼칠 이유가 없었다. 대일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고, 영토의 동쪽날개에서는 평화적인 국경선이 필요했기 때문에 1941년 일본과 소련(현 러시아)은 서로 불가침조약을 맺는다. 하루빨리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던 미국와 영국은 쿠릴열도와 사할린을 내주는 조건으로 소련의 참전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인 6일만에 일본은 백기투항을 했다.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을 깨버린 소련은 무력으로 쿠릴열도를 점령하고 그곳에 살던 2만여명의 일본인들을 추방해버렸다. 모리모토교수에 따르면, 북방영토는 전쟁에 의해 불법으로 점거당한 일본 고유의 영토이기 때문에 이것을 일본이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전쟁은 끝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즉 러시아에는 2차 대전의 전리품이지만, 일본에게는 억울하게 빼긴 땅이며 무엇보다 실향민에게는 그리운 고향인 곳이 북방영토인 것이다.
오가사와라, 넌 감동 그자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오가사와제도, 2014년 지역M본부 다큐멘터리 <독도전> 취재로 이곳에 방문했따. 일본에 살면서 죽기전에 가보고 싶은 곳이였는데, 그 기회가 너무 빨리 찾아왔다. 오가사와라제도는 행정구역상 도쿄도(東京都)에 있다. 도쿄항에서 남쪽 태평양 방향으로 1,000KM 떨어져 있고, 자연보호를 위해 비행기가 없기때문에 25시간 배타고 가야한다. 현재는 1시간 줄어서 24시간 걸린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배를 탔지만, 남자 3명이다보니 수다총알이 떨어져 어느새 잠이 들고 말았다.
25시간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오가사와라의 자연에서 그 위대함을 제대로 느꼈다. 난 유람선에서 돌고래를 본적은 있지만, 스노우켈링 장비를 하고 망망대해에 들어가서 내눈 앞에 돌고래가 춤추는 모습에 심장이 멈출 정도로 황홀했고 잠수실력이 좋은 친구들은 깊게 잠영해서 돌고래와 함께 빙글빙글 돌면서 올라오는데 말로 표현할수 없을정도로 끝내줬다. 피디선배와 카메라후배가 망망대해에 들어가는 것이 조금 무서웠는지 수중촬영은 내가 담당하게 되었고, 방송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사실 난 대학시절 방송카메라맨이 되고자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이수했다. 15년만에 이렇게 멋지게 사용될줄 누가 알았으랴. 김코디가 수중촬영까지 가능하다며 방송국에 소문이 퍼졌고, 나의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그런데 이제는 말할수 있는건, 하마터면 그 영상이 매장될뻔했다. 무사히 촬영했지만, 나의 부주의로 배에 승선할 때 GOPRO를 물속에 떨어트렸다. 너무나 급한 마음에 옛실력을 발휘해서 물속으로 들어가 간발의 차로 건졌다.
도쿄로 복귀하는날, 오가사와라는 나에게 또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항구에서 멀어지는 배를 보며 손을 흔들어주는건 일반적이지만, 투어로 업을 하시는 분들이 여행객들과 거주자들을 태워서 10여분간 배가 멀어질때까지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해주었다. 고객 감동이라는 것은 큰선물보다 심금을 울릴 작은 것으로 충분했다. 죽기전까지 오가사와라에 한번 더 갈수 있을까.
M본부의 <독도전>에 따르면, 오가사와라제도는 1670년경 일본에 의해 발견되었지만, 오랜세월 무인도로 존재했다. 19세기 들어 미국과 영국이 이 존재를 알게 되었고 1830년부터 그들에 의해 개척했다. 이곳은 고래가 엄청나게 많아서, 19세기 전반기 중반기 되면 서양의 포경선들이 일본 근해 심지어는 동해까지 오게되었다고 한다. 그 포경선들은 대게는 몇 년씩 바다를 떠나니기 때문에 섬을 발견하면 그 섬에서 식수를 얻거나 연료를 얻거나 하는데, 오가사와라는 섬은 포경선들에게 유용하게 활용될수 있는 섬이 된 것이다. 그러면서 섬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인 가치, 더 나아가서는 서양의 군사적인 압력이 오게 되니까 정치,군사적인 가치까지 주목하게 된다.
일본은 메이지유신이후 홋카이도와 오가사와라 제도를 편입한 이후, 오키나와와 타이완을 점령하면서 영토확장에 열을 올리게 된다. 특히 오가사와라의 영유권은 1876년 영국과 미국과 어렵게 분쟁 끝에 일본의 영토로 인정받고 편입되었다. 이 편입이 결과적으로 독도와 울릉도에 안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본은 이게 성공되자 새로운 영토 확장에 눈독을 드리고, 울릉도가 그들에게 매력적인 섬이였다. 죽도고증에 따르면, 하나의 작은 섬이긴 하나 장차 황국에 도움이 될 만한 섬으로서, 남쪽에 있는 오가사와라섬보다 한층 더 주의해야할 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제는 일본이 더이상 독도에 대한 영토집착을 못하도록 한국이 나서야 할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