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

by 에도가와 J

취재로 처음 만나는 팀은 소통이 중요하다. 서로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이해하면서 손발을 맞춰가다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데, 2018년 M본부 취재로 만난 H피디는 워낙 말이 없고 그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라 친해지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럴땐 카메라감독이 유쾌하면 좋은데 이번팀은 궁합이 별로였다.


피디로부터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양칠성”의 기획서를 받았는데, 제목부터 신선 했다. 난 전쟁의 피해참상에 대한 역사에 조예가 깊진 않지만, 이번 아이템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빨리 조사해서 현장취재를 나가고 싶었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으로 태평양전쟁이 종결됐지만, 남방에 파견된 일본군 중 일부는 귀환하지 않고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가담한다. 1975년 11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게릴라부대 <팡그란 파팍>의 일원으로 독립전쟁에 가담한 일본인 3명을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추서하고 그들의 주검을 국립묘지에 안장했다. 그러나 그들 중 한명, 야나가와 시치세이는 일본인이 아니였다. 전북 완주군 삼례 출신 조선인 양칠성이 그의 본명이다. 양칠성은 일본군의 포로수용소 감시원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해방을 맞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일본인이 아니고 한국인으로 밝혀진 것은 일본의 우츠미 아이코교수(조선인 BC급 전범, 해방되지 못한 영혼의 저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그걸 알아냈을까? 그녀는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이 BC급 전쟁범죄자로 유죄를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강제로 동원된 조선포로감시원들은 왜 A급 일본인전범자보다 더 많은 죄값을 치러야만 했는지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고, 진정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하는 일본의 양심학자 중 한명이다.



취재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한 부분에 대해서 H피디와 의견조율이 안되었다.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내비게이터로 재일조선인을 섭외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기획과 편집에 대한 모든 책임은 그의 몫이기에 의견을 달지 않았지만, 그는 일본 내에서 재일조선들이 현재도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일제강점기 조선인 청년의 문제랑 동일시하고 그런 차별 속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싸우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재일조선인이 양칠성에 대한 인물을 우리들보다 더 많이 공감할 것이라고 했다. 난 이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가 생각했다. 왜냐하면 오사카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이 얘기해주신 말, “한국 취재팀은 책몇권을 읽고 우릴 판단한다. 재일한국인 후손들이 민족교육와 한국어교육을 철저히 받고, 한국 전통(제사 같은 것)을 한국보다 더 철저히 한다”, “한복을 입고 고국사랑이 대단하며, 일본인들로부터 차별받아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 “현실과 동떨어진 선입견을 가지고 재일한국인을 바라본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들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지 검증해야할 필요가 있고 남북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바라보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부분을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주인공을 섭외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각보다 재일조선인을 섭외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양칠성에 대한 존재를 모르고 H피디가 생각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난 2015년 아리랑TV의 <디아스포라의 밥상>취재로 신세를 진 코리아 NGO의 김선생님께 SOS를 요청했다. 귀찮을 법하지만, 본 프로그램에 딱 맞은 주인공을 소개시켜주셨다. 그녀는 바로 영화 <귀향>에서 정민역을 맡은 강하나였다. H피디는 대만족했고 나 또한 360만명의 관객동원한 귀향의 여배우를 만나다는 것이 설레였다.


6월 6일(수), 드디어 10일간의 일본취재가 시작되었다. 늦은 저녁 9시쯤 출연자 집에서 첫만남을 가졌다. 주인공인 하나의 어머니는 달오름이라는 극단을 운영 하신다. 이번 취재에 하나가 출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신 분이다. 대학진학을 앞둔 하나가 자신의 정체성 고민을 많이 하고 있기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좀더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선뜻 허락을 하셨다고 했다.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자식이 잘되는 것이라면 열불안갈리고 응원해주신다.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귀향에 출연한 이후로 일본극우로부터 가족들이 공격당할 것을 걱정하셔서 집외경 촬영은 꺼려하셨다.



우린 오사카를 시작으로 도쿄, 그리고 하나는 인도네시아까지 촬영을 동행했다. 그녀도 말이 많은 편은 아니였지만, 몰랐던 역사를 배워가며 양칠성의 입장에서 그 시대를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줬다. 너무 고마웠다.


인도네시아 촬영본 보다보면, 양칠성에 대한 연구가 한국보다 현지에서 활발하게 이뤄지는 것을 알수 있다. 인도네시아 인권위원회의 리마씨는 양칠성이 인도네시 아인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메르테카(인도네시아어로 독립)을 외쳤고, 인도네시 아의독립과 인권을 위해 싸워줬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인도네시아 인문학부 로스티노교수에 따르면, 양칠성은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였다. 일본의 식민지 경험이 있어 우리와 같은 처지라 생각했고 우리를 그의 친구로 여겼다. 양칠성에게 독립은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가와 인간의 권리였고 그 또한 한국의 독립을 꿈꾸는 청년이였다고 했따. 너무 짠하다. 그리고 자랑스럽다.


전쟁의 참상으로 잃은 한국의 청년, 우리의 선조들이 한두명이 아닐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희생된 영혼을 보살펴야한다. 시민들도 그들의 삶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역사교육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02화일본의 집착, 해양영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