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는 나의 구세주이자 파트너

by 에도가와 J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미디어의 취재코디네이터로서 어깨에 힘주고 자랑할수 있는 건 독도취재를 9번이나 담당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가 젤 많이 하지 않았나 싶다. 독도는 나의 생계를 지탱해주었고 일본인들 조차 평생 가보지 못하는 곳까지 안내해준 고마운 파트너이다.



2012년 M본부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섬전쟁> 취재를 맡았다. 해양영토를 둘러싼 분쟁에 대한 얘기다. 전 세계는 조금이라도 더 넓은 해양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그 각축전 안에 육지면적의 12배가 넘는 해역을 가진 해양대국 일본이 있다. 북쪽에서는 러시아와 분쟁중인 북방4도, 남쪽에서는 중국과 분쟁중인 센카쿠열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독도까지. 3면의 바다에서 영토분쟁을 벌이며 해양영토팽창전략을 조용하면서도 집요하게 펼치고 있다.


그 반대편엔 급부상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양패권의 야욕을 드러낸 중국이 있다. 2012년 중국의 첫 항공포함인 바랴그호의 취역으로 세계에서 열번째 항공모함 보유국이 된 중국은 2020년까지 4척의 6만톤급 중형항모를 추가 건조할 구상까지 세우며 동아시아해역을 긴장의 바다로 몰아가고 있다.


일촉즉발의 아시아 해역 속에 위태롭게 서 있는 우리의 땅 “독도와 이어도”. 섬전쟁 1부에서는 일본 新해양제국의 부활을 다뤘다. 2인용 침대크기의 암초 오키노토리시마로 일본 국토면적보다 넓은 해역을 차지하려는 “인공섬작전”, 2차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러시아에게 빼앗긴 땅 북방4도, 그 섬들을 1945년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뒤집기작전”, 일본이 실효지배를 하고 있지만 중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센카쿠, 거인이 된 이웃 중국으로부터 섬을 지켜내려는 “버티기작전”, 명명백백한 우리 고유의 땅 독도를 끊임없이 들쑤셔보는 “지르기작전” 그들은 왜 독도 찔러보기를 멈출 수 없는지, 그리고 일본의 독도 도발에 담긴 큰 그림을 밝히는 내용을 담았다.


2부에서는 중화의 바다 대륙의 역습을 다뤘다. 영토면적 세계 3위의 중국. 하지만 해양영토는 일본의 1/3수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비좁은 해양영토는 해결해야할 과제이다. 중국 VS아세안6개국의 바다 쟁탈전, 지상최대의 분쟁지역인 된 남사군도. 이제 미국까지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면서 세계 최고 강호들의 파워게임의 장이 되고 있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의 길목을 막고 있는 센카쿠, 그 장벽을 뚫기 위해 중국은 오키나와 독립까지 언급하는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 최근 해군력을 증강하며 노골적으로 해양영토 쟁탈전에 뛰어든 중국의 현재와 분쟁의 불씨를 안고있는 이어도의 불안한 미래를 조명하였다.


일본취재는 2주간에 걸쳐 중국과 분쟁지역인 센카쿠열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독도, 그리고 러시아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북방영토를 모두 카메라에 담았다. 활자모양인 일본은 생각보다 넓었고, 국내이동 중 비행기를 무려 10번이나 탔다. 취재현장은 새로운 정보들이 넘쳐났고, 일본의 극우에게 미행과 헤이트스피치,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대박사건까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기억이 많이남고 소중한 보물까지 거머쥐는 취재였다. 아마도 취재코디에서 은퇴하기전까지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않을 것 같다.


나 지금 미행 당하고 있어요


취재팀은 매년 “타케시마의 날” 행사가 개최되는 시마네현을 찾았다. 그런데 다른해와는 달리, 그들만의 잔치를 깽판치고자 한국에서 극우들이 입국했다. 우린 그 정보를 입수하고, 취재당일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향했다. 벌써 시마네현 도심은 일본극우의 도발로 도로가 시끄러웠다.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 분위기가 매우 엄습했다. 어디선가 우릴 예의주시하는 눈빛들이 여기저기서 빛나고 있었다. 난 당당하게 호텔로 선배와 함께 들어갔다.


일본경찰: 어디가세요?

김코디: 친구만나러요.

일본경찰: 신분증 보여주세요?

김코디: 갑자기 신분증을 왜 보여달라는 거죠?

일본경찰1: 이 호텔 출입자들 모두 검문중입니다.

김코디: 무슨 검문인지, 정확히 설명을 해야 협조를 할꺼 아닙니까? 일본경찰은 다 이런식인가요?

일본경찰2: (서툰 한국어 말로) 미안합니다. 오늘 타케시마의 날인데, 한국에서 반대집회를 위한 단체가 방문했습니다. 외교적 마찰이 일어나면 안되기에 호텔 출입하는 사람들을 검문하는 중입니다.

김코디: 그래요. 신분증 여기 있어요.

일본경찰2 : 협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호텔안을 둘러보니 제법 경찰과 극우들이 많이 보였다. 극우들은 우리가 그들의 한패인줄 알고 힐끔힐끔 째려보며 쳐다봤다. 난 개의치 않고, 신분증을 돌려받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난 한국극우가 묵고 있는 5층이 아닌 6층을 눌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벽면앞 탁자에 전화기가 있었다. 혹시 한국극우들이 일본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을 것 같아 전화를 했다. 문앞에 감시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해달라고 하니 있다고 했다. 우린 마찰이 일어날 것 같아 그들을 만나지 않고 본 촬영을 위해 시마네현청 행사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는데, 차선을 바꿀 때 마다 영화의 추적장면처럼 2대의 차량이 계속 따라왔다. 일본경찰인지 일본극우인지 모르겠지만, 심장이 콩닥콩닥거리기 시작했다. 마츠에성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는 순간, 100여명의 일본극우들이 우리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학성기에 큰 목소리로 "조센진 꺼져라, 타케시마는 일본땅이다"라며 헤이트스피치로 우릴 자극했다. 취재스탭들은 처음 접하는 일이라 꽤 놀란 눈치였다. 나 또한 쫄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그 무리를 보니, 예전에 내가 취재를 했던 <재특회>라는 극우단체의 리더인 사쿠라이상이 보였다.


김코디: 사쿠라이상 오랜만이에요.

사쿠라이: 키무상은 여기 무슨일로 왔나?

김코디: 취재하러 왔지요.

사쿠라이: 한국 극우들의 패거리가 아니군.


그의 말한마디가 끝나자말자, 소란스런 헤이트스피치는 조용해지고 그들의 패거리들은 물밀듯이 흩어졌다. 2011년 그의 취재가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줄이야. 일본에서 극우를 취재할때가 종종있다. 마찰이 일어나면 안되니, 항상 조심하라고 하는데 물리적인 충돌은 거의 없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외교적 마찰로 바로 번져 현장에서 경찰들이 그들을 연행하기 때문이다. 난 긴장했던 마음을 가다듬고 어깨에 힘을 넣어 취재에 임했다.


우린 마츠에성에 올라가 시마네현의 전경을 찍고 내려와 행사장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한국극우들이 탄 버스가 도착했다. 그들은 버스에서 내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목소리를 높였고, 그들을 온몸으로 막는 일본경찰의 모습을 놓치지 않고 리얼하게 담았다. 일본극우도 이에 뒤질새라 “타케시마는 일본땅이다”라는 포스터를 들고 시위를 했다. 우린 이 모든 과정과 일본극우들의 인터뷰까지 깔끔하게 취재했다. 현장성이 100퍼센트 담긴 100점 만점의 취재였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영토영유권분쟁은 지금으로부터 320년 안용복이 일본어민들에게 나포되고 돌아오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일본이 노골적으로 침탈 야욕을 드러냈던 섬은 바로 울릉도다. 울릉도의 영유권을 두고 3년에 걸쳐 진행된 조선과 일본의 외교분쟁이 <울릉도쟁계>다. 이 외교협상의 결과, 일본은 울릉도의 소속을 조선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당시의 조선정부는 해양영토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울릉도를 일본에 빼앗길 위기를 맞지만 안용복, 남구만 등의 활약으로 울릉도를 지켜내게 된다. 이 울릉도쟁계는 이후 일본의 억지주장을 깨뜨리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일본 군국주의 뿌리 요시다쇼인.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인 그는 1858년 제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선과 만주를 점령하려면 타케시마(울릉도)를 첫 발판으로 삼으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17세기 한일간의 합의가 마무리 된 울릉도쟁계의 증거로 인해 울릉도를 침탈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영토확장의 욕망을 멈추지 못하고 독도에 울릉도의 일본측 옛 이름인 타케시마를 붙이고 일본영토로 강제편입한다. 엉큼한 일본!


도쿄에선 영토문제의 전문가 모리모토교수를 취재했다. 누군가가 "운빨도 실력"이라고 했거늘, 방송이 되기전인 6월에 그가 일본의 방위상(한국의 국방부장관)으로 취임된 것이다. 대박 중의 대박이였다. 인터뷰 급이 완전 달라진 것이다. 방송 후, 어떻게 지역M본부가 유례없는 일본의 현방위상을 섭외하고 취재했는지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나의 주가는 올라갔고, 제작진의 세심한 준비와 리얼한 현장취재, 그리고 완벽한 구성과 편집으로 그해 방송기관에서 주는 상이란 상은 다 받았다고 한다. 너무 흐믓했다. 여담이지만, 한국다큐멘터리 역사상 일본의 방위상이 한국방송 출연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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