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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랑 Dec 19. 2023

누구에게나 섬이 있다

보통날의 시선 15


 아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대구, 구미,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 군산을 다녀갔다. 그중 몇이 이곳에 있는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를 보기 위한 일정을 따로 잡는 걸 보고 사람들은 왜 늘 섬이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일지 생각하다가 문득 나 역시 가슴에 섬 하나가 살고 있음을 인지했다. 그렇게 품은 섬이 늘 뒤척이며 나를 지탱해주고, 살아갈 방향의 표지가  되어 주었다는 걸 깨닫는다. 내게 섬은 나부끼는 깃발 같은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 섬이 상징하는 것은 끊임없이 뒤척이는 물결이고, 멈추지 않는 그리움이며, 늘 새롭게 살고 싶은 아침이다. 


 오래전 서해안의 ‘임수도’라는 무인도에 간 적 있다. 임수도는 해변에 다양한 모양의 수석이 많아 돌을 채취하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는 섬이다. 임수도 석은 특히나 검은 윤기가 돋보여 인기가 많아 한때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물결에 쓸리는 몽돌 소리와 맑고 고즈넉한 해변 풍경을 가진 섬이다.


 임수도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 인접해 있는 섬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폐어구와 생활 쓰레기들이 섬 주변에 가득하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이지만 수석 찾는 일이 취미인 직원들과 함께 간 직장 야유회다. 실내에 가두고 보는 수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나, 무인도를 볼 수 있는 기회여서 따라나선 길이다. 배 한 척 빌려 십여 명의 직원들은 이른 아침 선착장을 출발했다. 지루한 뱃길이지만 섬을 보러 간다는 설렘이 있다. 그것도 무인도에 대한 설렘. 우리가 언제 무인도에 가보겠나 싶어서 가는 내내 설레던 뱃길이었다. 


  바다 끝 멀리 어디쯤 있을 섬을 향해 고개를 한껏 늘였을 때 섬은 거기 혼자 있다. 맑은 파랑을 찰랑거리며 차르랑 거리는 모래와 돌이 바닷물을 보내고 들이며 먼 곳의 소식에 귀 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섬은 세상 모든 사람의 그리움을 받아내는 곳이다. 갯가 어머니들의 비린내 젖은 치마폭이다. 죽은 듯 고요하던 섬이 갑작스러운 사람들의 발길로 화들짝 놀라며 일렁이는 모습을 보았던가. 마음에 드는 돌을 줍기 위해 잔뜩 고개를 숙인 사람들의 모습조차 선한 풍경으로 보일 만큼 임수도는 적막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는 이미지가 주는 어떤 낭만에 이끌릴 나이였다. 무엇을 시도해도 가능할 것 같다는 착각이 용서될 나이. 단 며칠 만이라도 무인도에 나를 놓아두고 싶은 바람의 간절함이었을까. 숱한 세월이 지났는데 표식처럼 그날의 풍경이 남아 있다.  


 이윽고 한나절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보는 관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한 수석 몇 점씩 들고 정박해 놓은 배에 올라탔다. 섬에 한 번쯤 눈길을 주었을까? 그렇게 무인도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섬은 늘 그랬던 것처럼 혼자 남겠지. 저를 두고 오는 안타까운 마음 아랑곳없이 제 일상을 뒤척이겠지. 섬은 다시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에 자기의 존재를 가라앉히며 철썩이겠지. 그렇게 두고 온 섬 하나가 오래 마음에 살고 있다. 가끔 섬을 떠올리며 이십 대의 어느 날이 거기 머물러 있는 듯 섬을 어루만지곤 한다. 섬이 딱히 무인도여서만은 아닐 것이다. 가슴 언저리에 오래도록 남아 이토록 뒤척이는 까닭은.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가지 못하는 섬의 뒤척임에 나를 얹는 순간 나는 한 개 섬이 된다. 칠흑 같은 밤 깃발 끊임없이 흔드는 손짓이고, 나는 몸짓 철썩이는 물결이다.


 길 떠나는 자는 언제나 조금 막막하다. 환절기 감기 걸린 아침처럼 어지럽다. 그런 비틀거리는 일상을 섬은 언제라도 받아준다. 좀 비틀리면 어떠냐. 섬은 늘 거기 있는데, 깃발 흔들며 다시 살아가자고, 힘껏 나부끼는 섬이 위로를 펄럭이는데, 기울이며 살아도 괜찮다고 멀리서 뒤척이고 있는데, 기꺼이 그 손 잡아야 하지 않겠나. 왜냐하면 섬은 기다리는 일에 자기의 존재를 기꺼이 내주고 있으니까. 언제라도 힘이 들면 오라고 온 맘 다해 자기를 내주고 있으니 말이다.  


 먼바다 끝 고요히 빛나는 섬, 그 섬의 한복판을 나부끼는 물결처럼 오늘도 흔들리고 뒤척인다. 바람을 맞받는다. 깃발처럼 나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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