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날의 시선 20
‘가장 위대한 생각이란 가장 단순한 법이다.’라는 말은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에 나온다. 생각이 많은 내게 필요해서 곁에 두고 아끼는 말이다.
단순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 우연한 만남이 오늘 아침에 있었다.
치과 예약이 있는 토요일, 환자가 많을 걸 예상해,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섰다. 은발의 할머니 한 분이 벌써 와 계셨다. 문도 열지 않은 치과 앞 의자에 앉아 일찍 오신 여유를 부리시며 한 마디 건네셨다.
“아이고, 추운데 일찍 오십니다.”
“할머님도 일찍 나오셨네요. 아직 아침 공기가 쌀쌀해요.”
알고 보니 할머니는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이웃한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었다. 걸어오셨다고 하면서 오늘은 50여 분 거리에 있는 새벽시장에 가 두부도 사고 머위나물이랑 봄나물 두세 가지 사서 올 때는 버스로 오셨고, 간단히 아침 식사 마치고 20여 분 걸어서 치과에 오셨다고 한다. 나이를 여쭈니 89세. 험한 날씨 빼고 거의 매일 6~7킬로미터를 걷는다며 젊을 때 운동 많이 해두라는 말을 당부한다.
“제가요, 8남매를 둔 엄마인데요, 어느 자식은 운동을 아주 열심히 잘하고 또 어느 자식은 어찌나 운동하는 걸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모 앞서가는 불효를 하지 않으려면 정신 차리고 많이 걷고, 수시로 걷고, 틈나는 대로 걸어야 한다고 잔소리를 마구 합니다. 새댁(어르신 눈에는 젊어 보이나?)도 지금부터 당장 걸어 봐요.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 것이구먼요. 힘들다 싶을 때도 있지만 운동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나면 그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치 좋아요.”
운동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공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는 조용히 꾸짖듯 말씀하신다.
할머니가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시는 것은 자신을 위한 것도 있으나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늘 걷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면서.
단단한 나뭇가지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과 연두색 이파리를 만난 듯 그래서 가슴이 풋풋하게 물드는 듯, 잠깐 만난 할머니의 모습에서 받은 인상이 그랬다.
나는 궁금하여 식단이며 따로 어떻게 건강을 챙기시는지 여쭈어보았다.
자주 걷고, 제철 음식 재료 구입해 직접 만들고, 되도록 밥은 적게 먹으려고 한다. 고기를 가까이 하지 않으나, 생선은 주로 쪄서 드신다고 하셨다. 그 나이에 허리도 무릎도 아프지 않고 특별하게 챙겨 드시는 약도 없다면서, 좌우간 걷는 일만큼 좋은 건강관리도 없다며, 어쨌든 걸어야 한다며 조곤조곤 설득력 있게 당신의 건강 비결은 걷기라고 힘주어 추천하신다.
할머니라고 하기엔 말씀하시는 것도 조리 있고 몸자세도 꼿꼿하고 단아해서 참 고우시다는 말을 해드렸다.
“뭘요. 늘 걸으면서 오늘처럼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참 좋겠다고 날마다 기도해요.”
인생을 성실하게 사신 분에게서 엿볼 수 있는 넘침이 없는 절제의 미를 본다.
“내가 여기 치과를 오래 다녔어요. 편해서요. 이를 치료하러 가끔 들르면 제가 관리를 잘 못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이렇게 말해요. 원장님이. 그러니 어찌 다른 곳에 가요. 늘 한결같이 겸손하고 따뜻한 분을 두고요.” 할머님의 성정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할머니와 같이 느끼는 바여서 좁고 오래된 치과의 계단을 번번이 오른다.
치과의 문이 열리기 전 짧은 시간에 89세 어르신의 삶과 몸에서 우러나오는 실천의 철학을 들었다. 정리해 보니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임이 틀림없다. 나와 다른 점은 할머니는 단순화시킨 자신의 삶을 몸소 실천하면서 살고 계신다는 것이다.
걷고 달리는 일은 외부 세계로 향하는 시선의 능동적인 행위이다. 정체된 몸과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고, 유폐시켰던 감정의 소요를, 밖을 향해 내뿜는 시간이다.
‘성을 쌓는 사람은 이동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라고 했던가. 역사는 어쩌면 용기를 내어 한 발짝 내디딘 내 안의 사투를 이겨낸 밖에서부터 이루어졌는지 모른다.
시간이 없다고, 날씨가 고르지 못하다고, 춥거나 덥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이 모든 핑계를 합리화시키며 운동을 게을리했다.
툭하면 차를 끌고 나오는 습관에 익숙한 나를 돌아본다. 걷는 일에 관심이 많으면서 정작 걸어도 되는 거리마저 걷기를 주저하며 살고 있었다는 자각이 든다.
오후엔 작정하고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얄팍한 각오이고 다짐인가. 마치 오늘부터 걷겠다는 의지의 선포식 같으니 말이다. 오전에 우박을 동반한 비가 내렸던 게 사실이었나 싶게 말짱한 얼굴인 공원은 봄을 맞느라 분주하다. 수양버들은 연두로 퍼지기 시작했다. 눈이 싱그럽다. 수풀 위로 갈색의 자라가 일광욕하고 있다. 앗!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올해 처음 듣는 소리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공원으로 몰려드는 시기다. 이곳의 벚꽃은 가히 서울 여의도 윤중로 벚꽃에 비할 바 없다고 여긴다. 거기에 철저히 벚꽃만 볼 수 있는 길이 여러 곳으로 뚫려 있어 호젓하게 벚곷과 함께 할 수 있다. 아득하게 벚꽃 만개한 공원의 길을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 핑계를 대고 봄날의 걷기는 한동안 이어지려나.
누군가의 걷기 예찬은 해도 해도 끝이 없으나 정작 내가 한 걸음 걸을 때만 유효하다. 얼마나 많은 설렘과 감동이 밖으로부터 오는가. 누적되었던 마음이 크고 깊을수록 밖으로부터 받는 에너지는 더 간절하다.
경이로움과 감탄이 이어지는 문밖 봄날의 거리가 초록의 사태를 퍼붓는다. 기꺼이 그 사태 속으로 들어간다.
할머니의 걷는 삶을 통해 단순하게 사는 삶의 아름다운 의지를 배운다. 비운다는 개념하고는 다르다. 자신의 삶을 단순화하는 작업이 문밖을 나서는 행동으로부터 올 수도 있음을 오늘은 실천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