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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논이Noni Jun 12. 2023

낯선 제주도 할망이 선사해 준 절정 경험

버스 안에서 백발할머니가 주신 선물



고구마 1.5kg 한 상자

커다란 흙대파 한 단

제주 콩나물 한 봉지

쌈채소 한 봉지


퇴근 후 장바구니도 없이 마트에 들러 손에 들고 올 요량으로 고구마 한 상자만 산다는 게 그만 정신 차리고 보니 탑을 쌓았다. 도서관 동료께서 선물로 주신 큼지막한 백합꽃 한 다발도 식재료 탑과 함께 손에 들려있었으니 꽤 무겁고 위태위태한 꼴이었다.


'종량제 봉투를 하나 사야 하나?'


쓰레기 안 만드는 생활에 도전하는 여자 혼자 사는 집에서 2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는 불필요하게 크고 위생상 좋을 것도 없기에 700원 아끼자고(내가 봐도 지지궁상) 결국엔 모든 짐을 손에 들고서 집에 가기로 했다.


A4크기 크로스백에는 콩나물을 넣고

대파백합 다발은 옆구리에 끼고

고구마 박스와 쌈채소는 손에 들고서

한라산 등반하듯 낑낑대며

642번 버스에 간신히 올라탄 뒤

운전석 뒷좌석에 모든 걸 내동댕이치고 교통카드를 찍고서 자리에 앉았다.


식재료들을 옆자리에 쌓아 두고 창가 자리에 앉아 창밖 풍경을 보며 한시름 놓고 있는데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가 멈추자 웬 백발 할머니가 뒤에서 하늘색 천으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식재료 탑 위에 두고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가셨다. 처음엔 옷인 줄 알고 황당해서 내가 떨어뜨린 옷이 아니라고 말하려다 손에 들고 살펴보니 장바구니였다. 사려 깊으신 할머니는 내가 식재료 탑을 들고 버스에 등반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버스가 멈춘 틈을 타 내가 앉은 운전석 뒷좌석까지 몸소 굳이 오셔서 장바구니를 건네신 것이었다. 처음 보는 할머니가 주신 물방울무늬 무늬가 살짝 바랜 장바구니를 들고 걷잡을 수 없는 감동에 휘말려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감사하고 기쁨이 넘칠 때 나는 온몸이 하늘로 붕 뜨는 것처럼 초현실적인 감각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내 몸을 실은 버스전체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것 같이 느껴질 만큼 진심으로 할머니께 감사했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이의 호의가 타향살이하는(서울이 고향이지만 20대부터 외국을 집시처럼 떠돌며 그림 그리며 살다 팬데믹으로 어쩌다 제주도에 정착한) 떠돌이 한량을 눈물짓게 만들었다. 낯선 할머니가 선뜻 건네주신 장바구니에 고구마, 쌈채소, 대파를 하나하나 넣으며 내 눈은 그렁그렁해지고 입꼬리는 귀까지 올라갔다. 흥분의 도가니로 온몸의 혈관 온도가 1도는 더 올라간 듯 더웠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단순한 나지만 남에게 도움을 받고 기뻐서 난리난 게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나도 할머니께 뭔가 보답을 해드리고 싶었다. 장바구니와 온정을 동시에 선사해 주신 아름다운 분을 다시 뵙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 내가 가지고 있던 백합꽃다발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광년이와 우위를 가리기 힘들 만큼 꽃을 좋아해 꽃그림을 평생 그려왔고 이 백합이 활짝 피면 그림으로 그리려 계획했었기에 처음엔 살짝 망설여졌다. 게다가 백합을 선물해 주신 동료분께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벌써 세 번째 받은 꽃다발이라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동료분의 지인이 백합농장을 하셔서 감사하게도 틈만 나면 백합꽃다발을 갖다 주셨다).



백합 다발과 할머니가 주신 장바구니


이윽고 내릴 때가 되어 정류장에 버스가 서고 내리는 문 곁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께 백합다발을 안겨드렸다.


"장바구니 감사합니다. 이 꽃다발 선물로 드릴게요!"


할머니는 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꽃다발을 받으셨다. 온화한 미소가 아름다운 백발의 할머니 모습은 마치 동그랗게 잘 다듬은 하얀 털의 비숑과 흡사했다.



그 할머니와 똑같은 비숑프리제. 개를 닮았다고 해서 죄송하지만.. 할머니 정말 귀여우세요! 출처:https://bichon-hirit.tistory.com/11




하얀 머리의 할머니께 안겨드린 백합이 할머니 머리처럼 하얗게 피었기를..

그리고 할머니가 그 꽃향기를 맡으며 버스에서처럼 활짝 웃으셨기를...!





감사는 반드시 진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거짓된 감사는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 진실한 감사는 좋은 점이 많다.
 
첫째, 감사를 하는 사람과 감사를 받는 사람 모두에게 이득이다. 이는 다양한 양성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하나, 감정적인 양성순환이다. 길버트 Gilbert의 연구에 따르면 긍정적인 일이 생기면 절정 경험(Peak experience)을 하게 되는데 이는 사건이 끝나는 즉시 사라진다. 하지만 건설적인 반응을 한다면 예를 들어 "좋아, 그때 일에 대해 다시 이야기해 볼까?", "정말 축하해!", 자세히 이야기 좀 해줘, 너무 궁금해!"등과 같은 반응은 절정 시간을 연장해 준다. 승진이나 수상 등 좋은 일을 겪으면 기분이 좋아졌다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그런데 적극적이고 건설적인 반응은 이런 행복감을 증가시킨다.
둘, 인간관계의 양성순환이다. 진실되고 적극적이면서 건설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은 비슷한 양성순환을 하게 되며, 기쁨은 더 고조된다.
셋, 긍정 심리학의 기능과 마찬가지로 긍정적인 감정을 축적시킨다.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20년대 미국의 부부관계에서 두 사람이 모두 상대방에게 적극적이고 건설적으로 반응하고 지지한다면, 대공황과 같은 위기 속에서도 부부관계는 견고해지지만, 그렇지 않은 부부라면 위기 앞에서 쉽게 와해된다.
 
둘째, 진실한 감사는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진실한 사람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 선량의 불꽃이 서서히 피어올라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줄 것이다.
 
셋째, 진실한 감사는 탐욕을 억제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마음은 돈, 명예, 지위 등 끓어오르는 탐욕으로 가득했다. 탐욕스러운 사람들은 소중한 것들을 많이 놓치며 산다. 이런 탐욕은 순수한 영혼의 눈을 가리고 하늘이 내려준 은혜를 잊게 한다. 사실 단순한 사람일수록 천국과 가까워진다. 천국을 믿지 않는다면 천국을 놓치게 될 것이다. 천국은 우리 마음속에 있으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감사는 형식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 온화한 미소, 마음을 담은 안부 인사,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말, 작은 선물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좋은 방법이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실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버드대 탈 벤 샤하르 교수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What is Happiness" 강의 중에서

 



싱그러운 6월의 제주도를 더욱 환하게 빛내주고 있는 동네에 핀 하얀 백합들.









꽃그림 전문입니다


요즘 연습중인 인물. 누구일까요?


더 많은 노니의 그림들 보러 오세요! 감사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nonicho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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