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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엄마 Jul 12. 2021

염색, 왜 해야 하는데?

나는 세상의 기준에 맞추고 싶지 않다.

  동안이다. 아니 동안이었다. 30년 살며 고생한 것보다 최근 10년의 고생이 더 컸던지 이제는 내 나이로 본다. 대학 졸업하고 버스를 탔는데 돈이 없어서 지폐를 넣었더니 기사 아저씨가 잔돈을 거슬러줬다. 짧은 커트였던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으로 오해한 엄마의 지인이 아들이 이렇게 컸냐고 물었다. (막내 동생과는 열 살 차이다.) 오해받았던 막내 동생이 좀 자라서 같이 시내를 나가면 남자 친구냐, 한 술 더 떠서 남동생 보고 "오빠냐?"라고 하기도 했다. (동생은 노안이다.) 

  그런데 머리는 빨리 세었다. 스무 살 남짓에도 흰머리는 있었다. 이러면 누군가는 듬성듬성 난 새치 정도를 생각하겠지만 서른도 전 동생이 내 머리 뒤에 앉아서 손으로 머리카락을 휘 넘기며 “흰머리 밭이네. 밭” 하면서 가위로 잘라줄 정도였다. 얼굴과 머리의 부조화. 대학교 때 멋을 내기 위해 시작했던 염색은 어느새 하얗게 올라오는 머리카락의 뿌리를 가리기 위해서 하는 염색으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얇고 가늘고, 힘이 없어서 염색을 하면 색이 빠지면서 더 밝은 색이 되었다. 다음에 미용실을 가면 전체 염색을 해서 색을 맞추거나 밝아진 기존 머리색에 맞춰서 밝은 색으로 염색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 염색을 하면 머리는 더 상하고 부슬부슬 날렸고, 뿌리만 하면 아무리 색을 맞춘다고 해도 자라면서 차이는 생겼다.  머리는 색깔로 띠가 생기곤 했다. 두피는 말짱했냐 하면 아니었다. 가렵고 하루만 감지 않아도 기름 층이 두껍게 끼이는 듯했다. 염색을 하고 난 며칠 동안은 머리가 가려움을 넘어 화끈거렸다. 염색을 하고 클리닉을 하고 간혹 펌을 하고. 가장 먼저 포기했던 것은 펌이었다. 분기에 한 번 하던 것을 반년에 한 번, 그리고 일 년에 한 번 드물게 하면서 포기할 수 없는 염색을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내가 염색에, 뿌염에 번 아웃이 왔다. 마지막 염색은 지난해 초에 했었다. 유료광고를 위해. 나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주로 유료광고를 진행한다. 배우가 광고하는 물건을 모두, 평생 쓰면서 사는 게 아니듯 나 역시 광고주와 (정확히는 대행사와) 나 사이의 서로의 욕구가 맞으면 유료 광고를 한다. 진지하게 하는데 돈은 그다지 진지하게 들어오진 않지만. 색깔이 잘 나면서 순한 제품이라고 해서 새치커버용으로 셀프 염색약을 진행했었다. 그때 했던 염색도 꽤 오랜만에 한 거였다. 내 마음속에서 한창 ‘이제 하기 싫어.’ 하는 소리가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던 때였다. 까맣게 또는 갈색으로 정돈된 머리카락 색을 보면 기분이 좋았다. 남 앞에 설 일도 많아서 아무래도 젊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올라와 있을 때면 지인들과 만났을 때 누가 말하기도 전에 “나 미용실 가야 되는데~”라는 말이 나왔었다. 그냥 당연히 하는 것. 내게 염색은 그런 거였다. 하나에 빠지면 온 신경이 그리로 가는 통에 꼬박꼬박 한 달에 한 번, 상하는 두피와 모발을 견디다 못해 한 달 반 만에 한 번씩을 가던 시절엔. 하지만 염색에 대한 불편함은 한 번 들자 더 많은 의구심과 고민으로 모습을 바꿔 빈번하게 올라왔다. 왜 염색을 해야 하지? 하지 않으면 어떤 거지? 흰머리를 드러낸다는 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걸까? 왜 우리는 나이 먹음을 감추려 하는 걸까? 까지. 

  사회는, 시대는 우리에게 젊음을 요구한다. 영원 불사의 삶을 원했던 진시황이 살아있었다면 쿵짝이 잘 맞았을 세상이 아닐까 싶을 만큼. 그런데 그 사회를 들여다보면 (주로) 미디어에 익숙해진(라고 쓰고 '길들여져'라고 읽는다.) 또 다른 내가, 또 다른 네가 서로를 향해 말하고 있다. “살이 쪘네?”, “펌이 다 풀어졌네.”, “염색할 때 됐는데?” 등등. 우리는 영원히 이 삶을 누릴 것처럼 몸을 관리하고, 치장하고 꾸민다. 주름 없는 피부를 위해 필러나 보톡스를, 마흔이 되면 이마에 히알루론산 정도는 넣어줘야 하고, 뚱뚱하거나 배가 나와서는 안 된다. 

나. 는. 이. 제. 그. 런. 것. 들. 이. 싫. 어. 졌. 다.


  나는 마흔둘의 나로 살고 싶다. 내가 가진 지독히 왜곡된 프레임으로 상처 받은 어린 “나”가 아니라, 아직 되지 않은 갱년기를 겁내며 한숨짓는 “나”가 아니라. 아직은 생리를 하고 있고, 흰머리는 많으며 등에 조금씩 군살이 찌고 있는. 잦은 맥주나 와인 혼술로 아랫배가 나오고 있는 나. 강력한 중력의 작용으로 이맛살이 내려오면서 눈가와 입가가 내려앉아가는 나. 

생계는 중요하니까 또 언젠가 유료 광고 섭외가 온다면 난 또 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리산 깊은 산골에 혼자 집 짓고 사는 게 아니라 지극히 물질적인 대도시에서 물질을 누리며 살고 있기에 이건 어쩔 수 없을 거 같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하던 당연한 의무감에서 벗어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난 시간과 그 벗어남의 시간에 대해서 얘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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