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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음내림 Nov 02. 2017

연애감정, 허상.


낮의 햇살아래 나란히 서서 달콤한 마음을

나누는 저 연인은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한다.


한 남자를 짝사랑하는 나의 오래된 벗은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제 막 결혼을 앞둔 나의 친구는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했다.



내 눈 앞에 다양한 사랑들이 이렇게 일상적으로

생명력을 갖고 서로의 마음을 옮겨다니며 움직이는데 정작 눈동자 겉의 진짜 나는

'사랑'을 믿지 못한다.


아니, 믿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절절해져

어쩌지 못하는 현상은 나에게도 일어난다.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랑처럼 나 역시

마음에 사랑을 갖는 과정과 감정은 똑같다.


하지만 내 사랑을 이루는 구성이

사회적 사랑과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 말하는 '형체가 없지만 모든 문제의

만능 해결책인 성스러운 감정=사랑'이

내게도 같은 의미의 사랑인 것이 아니라 


내게는,


인간이 욕망하는 대상을 성취하기위해

조바심을 낼 때, 우리의 성실한 뇌에서 이를

알아차리고 그 성취를 돕기위해 분비하는

생화학적 촉매제가 '사랑'인 것이다.



모든 세상을 왜곡된 모습으로 보게 만들어서

인간을 착각과 착시에 빠지게 만드는 그 현상을

나는 '사랑'이라는 거창한 말로 부르지 못한다.


나는 이 세상의 사랑이란,

속임수와 환멸이 그저 시각의 변천에 묻어 때마다

다른 얼굴 가죽을 뒤집어 쓰고 가면극을 하는 동안


우리들은 그저 홀린 듯

그 앞에 넋이 나간채 앉아서

무대 뒤 조잡함과 쌓여가는 백지 수표는

보지도 못하고 이미 가진 것과 못 가진 것도 더욱

내어주게 만드는, 쉬운 말을 용케도 잘 포장한

'복합적 거짓말'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에게도 간절한 대상이 생기면

여느 사람들과 동일한 증상이 생겨난다.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은 한낮과 밤에도,

봄의 시작과 겨울의 끝자락에도.

원하던 원하지 않던 낮 12시 반의

내 그림자 안까지 불쑥 불쑥

아 들어와 자리를 잡곤한다.


나역시 뜬 눈으로 당하며

여느 사람들과 똑같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앓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그 무게감과

질감이 내것에게서만 만져지기 시작했을 뿐이다.



내게는 너무나도 실체가 명확한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면 바다위를 유영하는 달빛

되는 것만 같아서 가끔은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상처를 주면 주는대로 깎여나가고

받으면 받는대로 새겨지는 점토 찰흙같아,

조심히 그리고 능숙하게 틀을 잡아야지만

원하는 모양이 되는 내 것과 사람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또 어찌나 예민하고 유동적인지

살짝만 손을 잘못 대어도 형태가 기이해지고마는

나의 사랑은,


바다 위를 매섭게 할퀴고 지나가도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그저 잔상만 남는 그들의

달빛처럼 청명하게 머리 위를 떠있지 못하고



자꾸만 내려앉아 내 눈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형체를 꾸려 내가 만져대는대로 변하고 때로는

생명력을 제멋대로 갖기도 하며

강제로 내게서 피를 내는 그런 것,


수면 위 달빛,

그것과는 다르단 거다.



또, 나의 사랑은 포괄적다.


그 창조의 시작이 친구가 될수도 있고

이성이 될수도 있으며 노인이 될수도 있고

아이가 되기도 하며 동물이 될수도 있고

아끼는 사물이 되기도 하는,

모든 것에서 시작하여 빼곡히 나의

마음 공간에 들어차 자리를 잡는,

대단히 부피가 큰 화합물로써 존재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찌나 변화무쌍한지 주위 환경에 따라

표정과 얼굴, 걸음걸이, 몸짓이 모두 일괄적으로

바뀌어버려서 어제의 그것과는 또 다른 그것이

되는 나의 사랑은 작게든 크게든 나에게 생채기

내고 앉았던 자리엔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간다.



좋은 원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

그 실체가 충분히 분명하다면

나는 존재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것인데

내 안에서 '인정'이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자연 발생적으로 상처가 생기기도 하니

내게는 썩 달갑지가 않은 것이다.



하나가 왔다가 제 몫을 다하고

그 자리를 떠나 남은 자리에 상처가 남았을 때

남겨진 상처가 채 아물기도전에 다른 것이

내려앉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고,

서두르라 재촉하고, 무너지면 책망하니

내겐 그 사랑 하나 지키는 것도

전쟁터에서 목숨을 부지하듯

너무나도 치열하고  버겁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믿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랑은 실체로써 존재할 때만 형식적으로

받아들이기로 스스로 타협했으며,

결국 실체로 존재하고자 한다는 것이

모든 사랑의 무대 뒤 진짜 모습이라는 것을


내 스스로 못박아버린 것이다.


나는 '사랑'이 보여주는

오늘의 얼굴을 믿지 않기로 했다.



그것을 믿기보다

차라리 내가 가면을 쓰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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