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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훈 Mar 21. 2023

마라

6장. 미워하지 마라

01. 그를 미워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많은 사람들과 미움의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도 원수가 되고 가장 친했던 친구와도 원수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과 형제자매와도 원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는커녕 잠깐의 이해당사자에게도 미운 감정을 품는다. 화를 내고 폭언을 한다. 상대에게 그 화를 표출할 수 없으면 자책을 하거나 술로서 그 스트레스를 풀려고 한다. 나에게 조금만 손해를 끼쳐도 그것에 대해 응징한다. 그것이 보통의 사람들이다. 그만큼 우리는 불안정한 존재인 것이다. 대학을 나왔다고 해서 돈이 많다고 해서 바른 인간이 되는 것도 아니다. 

 나카시마 요시미치는 그의 저서 <화내는 기술>에서 화를 참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그도 그것을 오래 끌지 말고 금세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억에 두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화가 아니라 그 화를 지속하여 미운 감정을 끌고 가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불교 경전 중에 하나인 법구경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미운 사람을 곁에 두고는 제대로 일을 할 수가 없다. 그것이 회사도 아닌 바로 내 집안에 일어난다면 그것만큼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매일 부딪혀야 하는 가족 그것도 나의 배우자라면 그것은 최악이다. 남편이든 아내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집안일을 직장까지 가져오지 말라고 하지만 그게 말만큼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미워하지 말자. 그를 미워한다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내 안에 있는 한 그 응어리로 인해 내 감정 또한 자유로워질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화해를 하는 것이다. 화해는 빠를수록 좋다. 결국의 문제는 서로의 의견차에서 오는 것 일거다. 누구나 자기만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하다못해 변명거리라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의외로 쉽게 오해가 풀릴 수도 있다. 비 온 뒤의 땅은 더 굳어진다고도 하지 않는가? 

 내 경우에도 친한 친구와의 오해로 인해 소원해졌던 경우가 있었다. 이 친구는 마음 씀씀이가 매우 어질고 사람 사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참 바른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전처와 헤어지고 난 뒤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 내게 하는 그 친구의 조언이 그냥 깐죽거림으로 들렸다. 모든 건 나의 자격지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부부간의 일은 그 두 사람만이 안다고 한다. 그 친구의 조언은 그 당시 내게는 그저 나의 불행을 가지고 내뱉는 승자의 전언으로 들렸다. 차라리 그냥 어깨 한번 툭 치고 “힘들지? 힘내라 친구야”라는 말이 더 나았을 것이다. 그 당시는 모든 것에서 예민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남의 불행을 두고 자신이 그만큼 행복함을 만끽한다. 타인의 불행이 곧 나의 행복인 것이다. 

 이런 친구도 있었다. 내가 재혼을 하고 난 뒤 어떤 자리에서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힘든 결혼을 두 번이나 하고 정말 대단해”.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매우 불쾌한 감정을 받았다. 그 친구는 나와의 친분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있음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는지는 몰라도 그런 말은 본인이 얘기하기 전에는 해서는 안 될 말이다. 나는 그것이 나를 비꼬는 말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본인이 있든 없든 타인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 삶이 아니기에 그의 입장을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와 우리 아이들은 엄마와 같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몇 년간 비밀로 했다. 우리가 약속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누군가가 물으면 시치미를 뗐다. 아이들은 심지어 일기에서조차도 엄마와 같이 생활하는 것처럼 썼다. 사람들이 하나 둘 눈치를 채 나가고 있을 때 조차도 그랬다. 어느 날 큰 딸이 어떤 자리에서 “우리 아빠, 우리 엄마랑 이혼했어요. 근데 왜요?”라는 것이다. 깜짝 놀랐다. 그때가 딸이 고2 때였던 것 같다. 중1 겨울방학 때 헤어진 이후로 그때까지 엄마도 찾지 않았다. 그 이후로 우리도 점차 엄마와 아빠가 함께 살지 않는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곧 그 동네를 떠나 이사를 했다. 큰아들을 뺀 아이들은 전학을 했다. 고3이던 딸아이는 전학을 했다가 내신 문제로 다시 원래의 학교로 돌아가기도 했지만 당시 나는 그 동네를 떠나는 게 아이들을 위해 좋다고 판단했었다. 모두들 그 전보다 씩씩해졌다. 맘을 조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가 마음의 문을 여니 의외로 많은 친구들이 우리와 같은 처지였던 걸 알 수 있었다. 아빠가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나 도망간 아이도 딸아이와 많은 것을 교감하고 서로 의지하는 듯했다. 아내에 대한 미움의 감정도 많이 수그러들었다.  미움을 마음 한 편에 두고는 제대로 웃을 수도 없다. 삶이 건조해지는 것이다. 만일 화해할 수 없다면 차라리 빨리 잊고 툴툴 털어버리는 것이 나에게 더 큰 에너지가 될 것이다.


 용서하라. 미운 감정을 내 마음에 두지 마라. 그것은 독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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