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는 꿈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막이 오르면
무대 위에 노래가 누워있다
흰 가운은 청진기를 목에 두르고 나타난다
눈꺼풀을 열어 눈동자를 확인한다. 앞섶을 헤치고 귀를 대본다. 빈 손을 흔든다. 손가락이 흔들린다. 엄지발가락을 두드린다. 당겨진 털 한가닥이 비명을 지른다.
시간을 돌리던 톱니가 멈춰버려
갈증은 박자를 삼키는데
손잡이가 휘는 속도에도
놀이는 꿈속에 등장하지 않는다
최면에 빠진 터널은 강약 없이 깜빡이고
도돌이표를 흔드는 박수소리
무대에서 내려오기 전에
손톱은 물어뜯은 흔적을 감추고
멀미약을 털어 넣는다
*****
아주 오래전 [노래를 찾는 사람들] 공연장이었다. 한양대학교 강당, 관객 속에는 소주병도 있었고 노가리도 보였다. 무대는 마른 먼지가 날리는 느낌이었는데 건설 현장이 연상되는 철골 구조물과 판자들이 있었다. 친구는 정말 어렵게 티켓을 구했다고 으쓱했었다. 그때 나는 군대에 속한 신분이었는데 낯선 경계의 시선이 만들어 낸 압력은 생각보다 거대했던 것이다
다나을 심리치료 연구소라는 제목을 생각했을 때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비장한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찢기는 가슴안고 사라졌던 이 땅에 피울음 있다...', 빠른 템포로 쫓아가던 '빨간 꽃 하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미싱은 돌고 도네...'
왁자지껄, 어떤 놀이에 끼었던 것 같았는데 그건 상상이었을까? 착각이었을까? 무대는 오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뿌옇게 속이 떨리던 시간이었다.
갑자기 빛바랜 공연 포스터를 생각하며 가슴을 쥐어박는 기억, '다나을'이라는 말에 기댄 3인칭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