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명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허물어지기 전에 해부학 교실로 간다
긴 복도는 소리로 어둠을 막는다
놀란 눈동자가 몸을 구석구석 여닫는다
한 생이 끝난 침대가
시트를 덮고 눕는다
아!찔한 온도
보존액에 잠긴 심장이 푸른 빛으로 뛴다
좌우 산맥을 건너는 피의 수축
새로 태어나는 박동소리
정교한 핀셋으로 피부 지층을 걷는다
지방과 수분을 제거하고 실리콘으로 채운 근육은
실핏줄이 선명하다
뜨거운 시간 훅훅 지난 뒤에 순서대로 엮어
영원이 된다
하얗게 마른 뼈는
손을 타서 반질반질하다
당길 때마다 관절을 들썩이는 줄인형
척추는 S자 곡선으로 서 있다
시신기증 동의서 17-077번
개명신청 완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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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명, 이름을 다시 얻는다는 건 어쩌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일이다.
긴 복도에 늘어서있던 철제 사물함이 주던 긴장감부터 포르말린 냄새와 투명한 유리 용기에 담긴 인체 표본들, 생의 이름들이 누운 테이블은 시트로 덮여 있었다. 습한 기운에 압도되어 아찔하던 해부학 교실의 기억.
실제 몸에서 분리한 부분은 얼마나 오래전에 이름을 바꾸었는지. 어떤 표정도 없는 공간이었다. 다른 경계를 욕망하는 한 인간, 나는 심장의 볼륨을 자꾸만 낮췄다. 감각은 잠재워도 일어나는 것이었다.
모두가 다른 삶으로 환생하는 생명일지도, 죽은 몸으로 다시 살 수 있는,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그곳에 새 이름이 있을지도...
개명은 쉽게 어둠을 걷어낼 수 없는 빛의 깊이를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