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놓아준다
한밤중 여자는 냉동실을 들락거린다
냉기에 등을 붙이려는 눈보라
잃어버린 길을 품고 있다
유통기한을 풀고 뿌옇게 숨을 토해내는 생선
고삐가 느슨해진 달을 본다
몸 밖으로 내미는 실핏줄
소금을 녹인 물에 어르고 채반에 건져 다독다독
기억을 깨우는 물결무늬 속살
붉은 알들이 꿈틀거리며 날갯죽지를 파고든다
빙산에 부딪친 부레의 지진
바람은 난파당하고 있다
녹슨 쇠구슬 같던 알갱이 부글부글 토해내던 친구는
엄마가 나간 집에 농약을 파는 아빠의 매운 등이 산다고 했었다
교실로 이어지던 108개의 계단
흉터는 아가미를 뒤틀고 꼬리를 잘랐다
계단 아래 내장을 펼친 바다가 헝클어졌다
얼음심지를 꺼낸 물고기
물살을 벗고 비닐팩을 입는다
가시를 걷어낸 바다는 다시 냉동실로 들어가 눕는데
웅웅 거리던 냉장고,
바다를 놓아준다
*****
친구의 입에서 쏟아지던 붉은 알갱이를 기억하고 있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아득해지면서 누군가 쓰러졌다. 교문에서 올라야 했던 108개의 계단. 나무에 매달린 잎들이 다 떨어졌다. 그리고 병원이었다. 위세척을 하고 침대에 누워 있던 친구를 똑바로 볼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빗자루가 닳아서 아무리 달아나도 자꾸만 얼어버리던, 시절이었다.
밤마다 냉동실은 소리를 내며 붉게 녹슬었다.
이제는 비늘을 긁어 도막내고 뼈를 발라낸 생선들만 냉동실에 살고 있다. 친구랑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때, 종려나무 화분에 가득하던 빛은 신선했었다. 얼지 않겠다는 주먹다짐, 차라리 부패를 선택하려 했던 것이다. 냉동실을 없애고 삶의 동토를 걷어내려는 발칙한 상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