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찍었던 단편영화가 있었다.
“1년에 한 편씩 영화를 찍겠어.”
나도 모르게 먹었던 그 다짐이 6년 동안 이어져왔다.
그리고 2년 전, 또 한 편의 영화를 찍었다.
이전과는 달리 예산도 더 많았고,
스탭도 더 많이 꾸려서 진행한, 큰 도전이었다.
그만큼 마음도 많이 쏟았고,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 영화는 여전히 하드드라이브 속에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30년 넘게 내가 나와 함께하며 느낀 가장 큰 특징은
‘시작을 조금 더 쉽게 잘한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걸 좋아하고,
그걸 준비하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 익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애매한 지점이 생겼다.
애매하다고 불렀지만,
사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알게 된 거다.
마무리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고,
흐지부지 넘기며 마무리를 놓치는 일이 잦아졌다.
가끔...
때에 따라...
자주... 종종...
어느새 ‘늘’이 되어 있었다.
2년 전에 찍었던 그 영화도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채, 하드디스크 속에 잠겨 있었다.
완성본을 만들긴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든 다시 수정할 거야... 마음에 들지 않아.”
라는 미련이 함께 잠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 결과물에 ‘완성’이라는 말을 붙이기가 어려웠다.
가장 많은 시간과 예산, 사람들이 함께했던 영화였기에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숨겨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담도, 무게도 더해졌다.
나와 함께했던 친구들에게도
마치 빚을 진 것처럼 연락조차 쉽지 않았고,
영화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불편해졌다.
누구도 따지지 않았는데도
혼자서 자꾸 ‘도망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런 무거운 마음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내가 삐걱거림을 느낄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 그 영화처럼 또 마무리 안 하고 도망치게?”
어느 순간 나는, 내 세상 속 또 다른 나에게
‘도망친 사람’으로 찍혀 있었다.
계속 쫓아다니는 이 찝찝함.
그 영화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 해도,
영화제에 제출하지 못했다 해도,
내 삶이 크게 어려워지거나
당장 영향을 받는 건 아니었다.
나는 내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었고,
할 일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하나.
내 안에 깊게 남아 있는 의문과 의심이 있었다.
무언가 새로운 걸 도전해보려 할 때,
이제는 더 이상
“그래, 해보자. 할 수 있어.”
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는 나.
“언제나 마무리에 약한 사람.”
언제나...? 그건 아니었는데...
이젠 어느새, ‘언제나’가 되어버린 듯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넌 원래 생각만 잘하지.”라는 말로
내 강점까지 깎아내리는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마무리를 해야
새로운 시작도 가능하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물론, 내가 말하는 ‘마무리’는
결과물 자체보단 나의 태도를 더 겨냥하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회피하는 나를 보고 싶지 않다.
마무리 = 회피하지 않는 태도
시작하고,
과정을 겪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나면,
생각보다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
“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은 이보다 훨씬 더 좋아야 했는데?”
“나 왜 이렇게 못했지? 이게 뭐야…”
결국,
만족하지 못한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나는 마무리를 하기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로 덮고,
이전의 작업과 흐리멍덩하게 작별하곤 했다.
그런 회피형 태도를 이제는 벗어던지고 싶다.
그래서,
드디어. 2년 만에 이 찝찝함을 덜어내기 위해
다시 시작했다.
하드드라이브에 있던 파일을 꺼내,
편집하고, 후반 작업을 하나씩 진행하고 있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과거의 나에게 욕도 많이 했다.
다시 저장 버튼을 누르고
영원히 닫아버리고 싶은 마음도 수십 번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꾸만 떠오르는 하나의 마음이 있었다.
“제발 좀. 직면하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걸로 후루룩 넘어가면 진짜로 ‘넘어간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결국, 나를 그곳으로 다시 끌고 오게 된다.
빙빙 돌고,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
미워도, 부족해도, 아쉬워도, 화가 나도
직면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지난 2년 동안, 이리저리 배회하며 그렇게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깨달음이라기보다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는 나.
“이렇게라도 해보면, 뚫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에 가까운 마음이다.
이번에는, 스스로 당당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나에게
“해볼 수 있겠다.”라고 말해주는,
그런 내가 되고 싶다.
완벽하지 않아도, 정답이 아니어도
그저 자유롭게 적어 볼 용기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이
그냥 흩어지지 않도록
[오늘의 끄적임]을 이어가 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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