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하려는 마음

by 우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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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잘할 순 없다지만...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걸요...


10년 전쯤 아주 조그마한 다육이 하나를 샀었는데
금방 죽이는 나의 똥손을 보고

식물들의 고귀한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식물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은 진즉에 접었다.

하지만 최근에 선물 받은 꽃을 그대로 방치했다
물에 꽂았을 뿐인데 축 쳐진 고개를 다시 드는 모습에
오랜만에 생경한 신기함을 느꼈다.
물론 1주일 정도 뒤에 서서히 지기 시작했지만

그때였다.

'그럼 뿌리가 박힌 식물을 키우기 시작하면 어떨까?'
라는 아주 작은 호기심이 거침없는 움직으로 변하더니
진즉에 넣어 놓았던 ‘식집사’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킨 순간.

그리고 마침.

친구와 대화 중 식물에 관심이 생겼다는 나의 말에
자신이 집에서 키우던 화분이 있는데 하나를 줄 테니 키워보겠냐는 친구.

친구는 내가 다육이도 죽이는 똥손이라는 걸 알 리가 없었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란 생각이 들어 굳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친구에게 화분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나는 물 한번 주는 것부터가 어려웠다.


초 긴장. 그러나
초 책임감.


이 친구를 데려왔으니 식집사로써 역할을 하려면 물은 줘야 할 거 같은 마음에
나무젓가락으로 흙 상태를 점검 후 마른 흙이라 (나름) 판단하여 물을 주었다.

뿌듯했다.
내 선택으로 내 직감으로 물을 주었다.

난 식물을 관리하는 여자다.
난 처음이지만 꾀나 용기롭게 잘 해내었다.

그렇게 며칠은 무난 무난하게 식물도 물을 잘 소화시키는 듯 지나갔지만
갑자기 눈에 띈 줄기의 주름이 있었다.



Q. 분명 없었는 데 있는 것은? '주름'


그리고 그 후부터
땡땡했던 줄기가 더 주름지기 시작했고
느낌인지 나의 불안인지 모르겠지만
모든 줄기들이 약간 물컹하게 느껴졌다.

‘과습’
그때 스쳐 지나가는 단어 하나.

과습을 주의해야 한다던 친구의 말.

내가 정말... 과습....? 의 상태로... 만든 것일까?라는 말과 함께
속 안에 내가 여러 명으로 분리되더니
지난 나의 행동 중 ‘나름’의 판단을 했던 그 순간을
여러 각도에서 계속해서 플레이백 시켰다.

물을 주던 순간...
[나름]의 감은 젠장...

그때가 너무 후회가 되었다.

당장 인터넷상 랜선 식집사 선배들을 찾아
나의 식물과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는 얘기를 발견하였다.

역시.. 과습...

랜선 식집사들의 ‘통풍’에 대한 팁을 받아.

바람이 더 잘 들 수 있는 곳으로 식물을 옮겼고
지금은 나의 식물은 집중 관리와 회복 모드인 상태이다.

<물 주기를 두려워하는 식집사 스토리>라는

나의 식물 입양스토리를 며칠 후 엄마와 이모에게 털어놓았다.


이모는 식물을 좋아하고 현재 30개 이상의 식물을 돌보고 있는 식집사 대선배이다.
엄마는 식물을 좋아하진 않지만 선물로 받은 식물을 죽이지 않고

집에 잘 적응시켜 살게 하는 쿨한 식집사 대선배였다.

식물 물 주기 스토리와 주름진 줄기를 보고 너무 놀랐다는 쫄보 식집사의 얘기를 듣고
대선배 두 분은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은 듯 여유 있는 웃음을 내보이며 한 마디씩 던졌다.

"
원래, 처음 키우면 다 그래.
그리고 그렇게 키워보고 또 죽이기를 반복하면서

(잠시만요.. 아직 제 식물은 살아있다고요... )

배우게 되는 거야.
"



이모의 말을 듣고 있던 엄마도 한마디 덧붙였다.

"
처음에 어떻게 다 잘 알아. 배운 거지 이번에.
계속 그렇게 데려와서 키워봐. 몇 번은 더 죽일 수도 있어
"


(아니.. 잠시만요... 아직 진짜 회복 중이라니깐요... )


나의 가장 가까운 식집사 대선배 두 분이
환상의 듀오인 듯 주거니 받거니 한 대화 속의

‘처음’이라는 단어가 유독 내 귀에 맴돌았다.

처음엔 다 그래
어떻게 처음부터 잘해.
처음이니깐.
처음엔 모르는 게 많지

오랜만에 선명히 들리는 ‘처음’이라는 단어와
‘처음이기에’가 아주 타당한 위로를 나에게 안겨주는 시간이었다.

처음엔 많이 죽이게 돼.

(다소 죽인다는 표현이 거칠고 회복 중인 나의 식물이 들을까 무섭지만..)

이 말이.. 지금 내가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그리고 늘 반복되었던 나의 마음의 습관을 단박에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식물에 대한 미안함과 약간의 부담감? 죽일까 봐 두려움?
못할까 봐...라는 이런 복합적인 마음아래에 깔린.
진짜 나의 마음 하나는
처음부터 잘하고 싶은 마음.

모든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큰 사람.

내가 그렇다.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클수록 실수를 많이 두려워하게 된다.
처음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해야 한다.


나를 격려할 때보다 나를 몰아붙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더 잘 붙인다.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거기까지 가는 데의 과정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나는 그 잘하는 단계로 단숨에 뛰어넘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들은 내가 나를 종종 닦달하고 밀어붙이게 만들었다.
긴장도 많이 하고 과하게 불안해하기도 일쑤.

살면서 내가 반드시 덜어내야 하는 마음의 무게라는 걸
식물의 작은 희생으로 나는 지금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회복 중인 식물도
자신이 적응해야 하는 식집사인 '나'에 대해 배우듯

나도 배우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다독이는
마음 하나는 ‘배우는 마음’이라는 점.

내가 가진 나의 마음의 습관들 그중에 처음부터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늘 짓눌렸던 나의 마음 한 구석도 배워보며

매일매일을 식집사 마음으로 배워보기를 다짐한다.


집에 있는 식물을 죽이고 싶지 않다면..
배우는 마음을 장착해.... 보... 자... ^___^

처음이라 서투를 테고 계속 서투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배우고 있는 나를 응원해 보며.


처음부터 잘할 순 없지만
처음부터 배울 수 있는걸요.



Special thanks to 집에 있는 식물.

배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나에게 큰 깨달음을 준
식물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열심히 회복 중인 나의 식물.
진짜 잘 살아있답니다. 아주 살짝 컨디션이 안 좋을 뿐...




완벽하지 않아도, 정답이 아니어도

그저 자유롭게 적어 볼 용기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이

그냥 흩어지지 않도록

[오늘의 끄적임]을 이어가 보려구요

^_____^

월, 화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