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랑 데이트하고 있는 내가 그냥 너무 좋아
내가 사용하는 앱은 이성의 프로필이 매일 특정 시간에 배달된다. 나에게 호감을 보인 상대에게 나도 호감을 표시하면 둘만의 대화방이 열리고 거기서 서로 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입한 다음날 들어가 봤는데 라이크 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기대에 부풀었다. 금방 남자친구가 생길 것 같았다. 처음 며칠은 나에게 호감을 준 상대를 거절하는 게 미안해서 선택하기를 포기하기도 했다. 선택을 안 하면 다음 프로필로 진행이 안 되기 때문에 상대의 호감을 수락해서 연결이 되든, 거절하든 둘 중의 하나를 해야 그날 배송된 프로필 선택을 끝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호감 표시를 별생각 없이 한다는 걸 나중에 알고 이제는 나도 부담 없이 선택한다.
모든 연결이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을 안 거는 분들도 있고, 대화하다가 중간에 사라지는 분들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연결돼서 대화를 나눈 분은 내가 기독교인인 게 부담스러웠는지, 얼마나 신앙심이 있는 기독교인인지 물었고 나는 매주 교회를 출석하는 모태신앙이라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는 믿음의 척도를 알아보는 질문을 두, 세 가지 더 하더니 결국 사라졌다. 앱에서는 연결이 쉬운 만큼, 일방적으로 쉽게 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데이트 잡기도 쉽지 않았다.
앱을 사용한 지 이주일이 지난 후에야 나는 첫 데이트를 잡았다. 내 첫 데이트 상대는 데이트 약속을 깔끔하고 자연스럽게 이끌어냈다. 연결 후, 그는 프로필에 적어 놓은 내 관심사를 같이 하자는 데이트를 제안했다. 날짜가 정해지니, 그는 본인 카톡 아이디를 떡하니 알려주며 카톡으로 연락하자고 했다. 군더더기 없고 효율적인 그의 기술에 감탄하며 데이트 약속을 어떻게 잡는지 한 수 배웠다.
너무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라, 뭘 입고 가야 할지 고민이 됐다. 여자처럼 입어야 할 거 같은데 치마를 입어야 하나? 내 나이에 소개팅 나갈 때는 좀 차려입어야 하나? 요즘 사람들의 데이트룩을 몰라서 유튜브를 찾아봤다. (인정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연애를 책으로, 아니 유튜브로 배운 여자다) 몇 개의 영상을 보니, 공통적으로 여성스러운 원피스를 입고 나가는 게 최선이고 바지를 입을 거면 구두를 꼭 신으라고 당부했다. 평상시에 안 입는 스타일이라,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고민하다가 불편한 옷 입고 마음마저 불편할 바에야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좋겠다 싶어 즐겨 입는 외출복을 입고 채비를 마쳤다.
벚꽃이 만개한 어느 토요일 오후, 나는 10년 만에 데이트를 나섰다. 그는 약속 장소에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났다. 남자다운 인상이었다. 대화를 해보니, 그는 실제로도 표현에 거침이 없는 쿨가이였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해보더니 인상과 성격이 너무 다르다며 의아해했다. 보기와 다르게 부끄러움이 많은 거 같다고 했다. 평소에 낯을 가리지는 않는데 그가 보기에는 소심하고 부끄러움 많은 소녀처럼 보였나 보다. 아마 너무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여서 긴장이 많이 됐든지, 그가 남자로 보여서 내가 여자로 보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둘 다인 건지도 모르겠다.
서로 알아가다 보니 그와는 오늘 하루 만난 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마음이 여린 편이라 경험상 너무 쿨향 짙은 남자한테는 잡아먹히기 일쑤다. 우리가 스쳐 지나가는 인연임을 직감해서인지, 연애사부터 앱 사용 경험담까지 솔직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앱을 사용한 지 오래됐고 이 앱을 통해 사귄 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막 앱을 시작한 열정 많은 나에게 조언을 해줬다. “심심하거나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만 해요. 매일 확인하지도 않고요. 여기에 매이면 힘들죠.” 그에게서 고수의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나란히 걷는데 팔이 살짝살짝 스친다. 다시 안 볼 사람에게 내 심장은 눈치 없이 설렌다. 그의 남성미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너무 오랜만에 남자랑 같이 있어서인지 이유는 모르겠다.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연애에 관심 없던 내가 데이트가 하고 싶어 졌고 지금, 이 좋은 봄날에, 낯선 남자랑 데이트를 하고 있다는 거다. 내 마음이 봄이어서 그냥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