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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Mar 26. 2023

(한 달 만난) 썸남과 쿨하게 헤어지는 법

1 단계. 헤어진 당일

썸남에게서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발견했다면, 이런 마음이 들어온 이상 시간을 갖고 더 알아볼 필요가 없다. 만나기로 한 주말까지 기다릴 수 없어서 그에게 바로 전화를 건다. 그에게 다짜고짜 그만 만나자고 통보한다. 썸남이 좀 더 만나보고 결정하자고 설득해도 나는 결과는 같을 거라며 단칼에 거절한다. 세상 쿨하게. 


2 단계. 헤어진 후 일주일

그와 매일 밤 나누던 통화가 그립다. 내가 어디서, 누구와, 뭘 하는지 작은 거 하나까지 궁금해하던 그의 관심이 사라지자, 내 일상에서 뭔가 큰 게 빠져나간 기분이 든다. 내가 너무 성급했나 후회가 된다.


3 단계. 헤어진 후 이주일

넌지시 그에게 문자를 보내본다. 그가 반갑게 답장을 해온다. 나는 됐구나 싶다. 다음날에는 그가 먼저 문자를 보내왔다. 그런데 그 후로는 연락이 없다. 내가 가끔 보낸 안부 문자에 답장을 해주긴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나는 안달이 난다. 나의 호감을 눈치 못 챘나 싶어 그에게 만나자고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그는 오전에 보낸 나의 문자를 저녁까지 읽지 않다가 결국 읽씹을 한다.


4 단계. 헤어진 후 삼주일

멘붕에 빠진 나는 그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언니를 소환한다. 언니는 첫 연애 상대와 결혼했다. 형부 전문가지만 다양한 남자 유형에는 취약하다. 나는 한 분야의 전문성도 떨어지고 다양한 경험 또한 부족하므로 나보다 한 수 위인 언니와 함께 썸남의 심경 변화를 심층 분석해 본다. 


좀 더 정확한 분석을 위해 남자의 관점이 필요하다. 아는 남자라곤 아빠와 형부뿐인데 아빠한테 물어볼 수 없어서 형부를 소환한다. 형부는 남자대표로서 결론을 내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썸남은 나에게 관심이 없단다. 


그가 나와 마음이 같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을 그에게 전해보고 싶은 쓸데없는 용기가 생긴다. 그에게 너무 고백하고 싶어 진다. 문자로라도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5 단계. 헤어진 후 한 달

장문의 고백 문자를 작성한다. 전송을 누르려는 찰나, 망설여진다. 고백을 받을 준비가 안 된 사람에게 내 감정을 퍼붓는 게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내 마음을 몰라서 나를 만나 주지 않는 게 아닌 것 같다. 문득 깨닫는다. 그는 이미 답을 줬구나! 그의 답장 없음이 그의 답이다. 그리고 이 일방적인 고백은 나의 집착임을.


6 단계. 헤어진 후 석 달

카톡 정리를 하다가 우연히 그의 프로필 사진이 바뀐 것을 발견한다. 누군가가 찍어준 사진 속 그는 활짝 웃고 있다. 행복해 보인다. 반면 내 마음은 행복하지 않다. 덮어두었던 집착이 꿈틀댄다. 헤어진 지 석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그에게 미련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니 짜증이 난다. 또 쓸데없는 용기에 휩쓸려 그에게 연락할까 너무 겁이 난다. 


미래의 나를 믿지 못해서 그의 연락처를 지운다. 그를 고이 보내주는 성숙한 태도가 아니라, 연락할 방도가 없어서 그를 더는 쫓지 못하는 방식으로 이별을 맞이한다. 헤어지자는 말만 할 줄 알았지 정작 헤어지는 게 뭔지 몰랐던 나는 이렇게 힘겹게, 힘겹게 그가 없는 내 삶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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