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연애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소개팅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질문 중 하나다. 나는 연애한 지가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나지 않는다. 기억을 거슬러 보면 대충 10여 년 전이다. 나의 긴 연애 공백에 질문한 남자는 놀라며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오래 연애를 안 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곤 묻는다. “왜 이렇게 연애를 오래 쉬셨어요?”
글쎄... 예쁘고 이성에 관심 많을 나이였는데 왜 연애를 안 했을까? 간혹 누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누군가를 알아가고 나를 설명하는 일련의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었다. 귀찮음이 외로움보다 더 컸던 모양이다.
한 달 만난 남자와 헤어졌다. 짧은 만남이었고 처음 일주일은 괜찮았다. 내 삶을 살았고 한 번씩 그가 생각났지만 ‘좋은 추억이었지’라며 의연히 받아들였다. 나의 이별 후폭풍은 헤어진 지 한 달이 지나서 그와 연락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 왔다. 소원한 친구와 가끔 연락하듯 안부는 주고받으며 지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성적인 그는 나와 연락하는 거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렇게 나는 그에게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그가 내가 원해도 가질 수 없는 대상이 됐을 때 나는 이별을 실감했다. 원래 가질 수 없는 것이 가장 소중한 법이다. 나만 바라보던 사람이 지금은 세상에서 제일 멀게 느껴진다.
이제 기억난다. 내가 왜 연애를 이렇게 오래 쉬었는지. 나는 사람 만나는 게 귀찮았던 게 아니라, 또 이별을 맞이하는 게 두려웠던 거다. 한번 사람을 마음에 들이면 내보내는 게 유독 어려운 나는 이 힘든 과정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연애에서 이별이 참 힘들었다. 그 사람이 미운데 많이 그립고, 이제 ‘우리’는 없다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감정이 뒤섞여 무척 혼란스러웠다. 내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고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은 그를 원망하며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우는 거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없이는 다시는 행복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다행히 시간이 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사실이었고 점점 그를 생각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우리가 만났던 만큼의 시간이 꼬박 지나서야 그와 상관없는 내 삶을 살게 되었다. 마침내 찾은 이 안정감이 너무 소중해서 깨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내 마음을 깊은 곳에 고이고이 넣어두고 마음을 주지도 받지도 않은 채 세월이 흘렀다.
10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왜 마음을 꼭꼭 숨기고 살았는지를 잊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 모든 아픈 기억을 잊은 채 마냥 설렘으로만 시작한 만남, 그 뒤에 이별이 있음을 이별을 경험하고 나서야 기억해 낸다.
이별을 잘하는 사람이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다. 누구와도 이별하기 싫은 나는 연애가 참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만남을 신중하게 결정하는 편이었고, 결국 아무도 만나지 않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10살이나 더 어른이 된 지금, 이별이 여전히 두렵지만 도망가지는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걸 알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새로운 인연에 또 설렐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쳐 간 인연을 내 마음속에서 깨끗하게 치우고 좋아하는 일로 일상을 채운다. 잠자고 있는 이성을 억지로 깨워 스스로 상기시킨다. 인간은 누구나 본인이 가장 행복한 선택을 하며, 따라서 과거의 나는 나에게 최선의 선택을 했음을. 이별 후에는 새로운 만남이 있음을. 그리고 인생은 아무도 모른다는 것도. 그래서 지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10년 동안 미뤄둔 숙제, 성숙하게 이별하는 법을 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