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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안솔 Mar 26. 2023

스쳐 지나간 인연들

앱으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연결된 후에는 지인의 소개로 만난 소개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사람을 만날 때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최대한 상대의 진심을 보려고 노력한다. 프로필을 볼 때도 마찬가지로 편견 없이 보려고 하고 상대에게 흥미로운 점이 있거나, 비슷한 결의 사람 같다거나, 진심이 보이는 분에게 관심이 간다.


재밌는 게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본능적으로 끌리는 것 같다. 만남까지 이어졌던 분들은 대부분 너무 활발하지 않고, 멋 안 내고, 허세 없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내면의 매력을 보려고 하고 조건을 따지는 편은 아니어서 만난 분 중에는 모두가 선호하지 않는 조건을 가진 분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무직, 이혼한 사람, 외국인, 키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도 만나봤다. 


프로필이 인상적이지 않아서 기대 없이 나갔다가 만나보니 너무 괜찮은 분들도 있었고, 반대로 프로필은 매력적으로 보였으나 실망스러운 분들도 있었다. 아래의 예는 후자에 해당하는 경우다. 


#1 조건만 따지는 남자

그는 모 대기업에 다니는 나보다 4살 연상이었다. 그는 자기와 ‘수준’이 맞는 여자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나이, 직업, 경제력, 학력 모든 면에서 자기에게 걸맞은 사람을 찾고 있다는 그를 마주하고 있는데 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우리는 수준이 안 맞았다. 제일 중요한 생각의 수준이. 


#2 자기 생각 없는 남자

그는 기독교인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의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시는데 제사 지내는 집이 싫다고 하셨단다. 종교는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같은 종교를 선호하는 그의 취향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본인의 신념이 아니라면,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는 해외 유학을 다녀온 여성은 성적으로 문란할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올해 66세인 우리 아빠도 그보다는 더 열린 사고를 하신다) 그리고 첫 만남에 결혼과 동거에 대한 내 생각을 물었다. 그는 동거를 반대하는데 그 이유는 “엄마, 아빠한테 정말 미안할 거 같아”였다. 나이가 마흔이나 돼서 스스로 고찰이 없는, 선입견만 가득한 그의 가치관이 너무 멋이 없었다. 


#3 뭘 원하는지 모르는 남자

D와 나는 두 번 만났다. 첫 만남에 설레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대화가 즐거웠다. 우리는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고 두 번의 만남 모두 낮에 만나서 밤에 헤어졌으니까 대화가 상당히 잘 통했던 것 같다.


두 번째 데이트에서는 이 사람이 남자로 보이는지, 우리가 연인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에게 여자친구를 찾는지, 결혼할 상대를 찾는지, 아니면 그냥 우정을 나눌 친구를 찾는지 물었다. 말 잘하던 그가 갑자기 고장이 난 듯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결국 여의도 한강공원 한 바퀴를 다 돌 동안 그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본인이 뭘 원하는지 생각 정리가 안 된 듯이 보였다. 아니면 확실히 아는데 쓰레기 취급 당할까 봐 말 못 한 걸 수도. 그와 긴 하루를 보내고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연락하지 않을 것이고 그 또한 그러하리.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4 갑자기 연락을 끊은 남자

일요일 오후 3시에 우리는 코엑스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만남이 그렇듯 우리는 서로의 가치관, 연애사, 신상정보 등을 나누며 두 시간 정도 대화를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나는 그에게 이성적 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사람의 감정은 주고받는 거라 그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둘 다 좋은 사람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취향이 아니었다.


소개팅 후 그가 적극적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의외였다. ‘오늘 짧게 봐서 너무 아쉬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사시는 동네로 갈게요’ ‘주중에도 만날 수 있어요?’ ‘어느 요일이 좋으세요?’ 등등. 우리는 월요일 오후까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월요일 저녁부터 그에게서 문자가 없다. 이걸로 끝이구나 싶다. 마음에 안 들었으면 ‘오늘 즐거웠어요’ 정도의 배려만 보이고 연락 안 해도 됐을 텐데 그는 왜 또 볼 것처럼 연락했을까? 문자 하루, 이틀 더 한 게 대수는 아니지만 궁금하다. 


아마도 최근에 연락하던 여자가 있었을 거다. 우리가 일요일 오후에 만났고 토요일에 선약이 있다고 했으니까 아마 토요일에 다른 여성분과 만남이 있었고 그분이 더 마음에 들어서 그분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만남들이었다. 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였을 뿐, 매력이 있는 분들이었다. 그들도 나도 평생 함께할 인연을 곧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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