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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 May 29. 2023

대단한 것이 항상 대단한 것은 아니다

삶을 위한 언어 탐구생활(2)


어떤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제1, 제2의 뜻까지 상세히 알려주며 아래에 친절한 예문까지 나와있지만, 사실 사전은 사람들의 천차만별한 활용을 모두 담아내진 못합니다. 당연하게도 단어의 뜻은 시대별, 집단별로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병신’이라는 단어는 90년대생 남성이 사용했을 때 가장 캐주얼하고도 다양한 의미를 갖습니다. 실제로 장애인을 비하하는 의미로서 ’병신’은 죽은 지 오래입니다. 이젠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인성 혹은 능력이 모자라다’는 의미부터, ‘기발한 행동과 말로 지인들을 즐겁게 하는 재주가 있다’는 의미로 쓰이는 듯합니다. 제가 가끔 지인들에게 듣는 표현이기도 하죠 - 물론 후자의 뜻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어의 사회성을 망각한 채 한 개인이 독단적으로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거나 축소하여 쓰기도 합니다. 예, 바로 제 이야기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고집으로 제멋대로 활용을 제한하는 단어들이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 이번 글에서 소개할 단어는, 바로 ‘대단하다’ 되시겠습니다.


월급을 모아 목돈을 모은 사람에게, 처음 해 본 스포츠를 잘하는 사람에게, 큰 대회를 나가 상을 탄 사람에게 쓰는 ‘대단하다’는 표현. 국어사전은 ‘출중하게 뛰어나다’, ‘몹시 크거나 많다’로 뜻을 설명하고 있지만, 제 활용은 거기에 조건이 붙어 그보다 협소합니다. 저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과 같이, 과정을 통해 일궈내지 않은 것에 여간해서는 ‘대단하다’는 수식을 붙이지 않습니다. 치밀한 고민과 열정을 쏟아 사업을 벌여 자본가가 된 사람과, 혈족으로부터 상속받아 어쩌다 자본가가 된 사람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단’하게 생각하고 또 말하는 사람은 전자일 겁니다.


어쩐지 제가 바라보고 겪고 있는 이 사회에선 ‘대단하다’라는 단어는 ’성취’가 포함된 칭찬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결과 혹은 현상은 어찌 보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 그러기에 최초의 언어 사용으로 다시 돌아가 사회와 나의 가치관을 되짚어보는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닮고 싶어야 하고 사회는 무엇을 멋지다고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사실 얼마 전 있었던 일 때문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지인과 밥을 먹다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너 대학생 때 주변에 막 엄청 똑똑하고 그런 사람 있지 않았어?”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매일 같이 술만 먹고 노는 것 같은데 귀신같이 학점은 잘 나오는 친구들, 또 영국 드라마 <셜록 홈스>에서 나온 ‘Mind Palace’같이 정말 ‘사진 기억력’이 있어 한번 보면 책 페이지를 통째로 이미지로 저장한다는 어떤 선배 이야기까지.


지인은 와, 그 사람 진짜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이 분은 무슨 뜻을 담고 한 표현이 절대 아닐 겁니다. 쉴 새 없이 떠돌아 나오는 제 말에 꾸준하게 감격스러운 리액션을 해주었을 뿐인데, 감사하진 못할 망정 저는 초치는 정정을 하고 말았죠. 그건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마치 혀가 아주 길어 코에 닿는 사람처럼, 대단하기보단 ‘신기한’ 일이라고.


(이런 짓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합니다. 과팅에서 <주량이 몇 병이에요-3병 정도 마셔요-와, 대단하다> 하는 대화 중에 저런 진지함을 내비쳤다간 앞으로 친구들이 여자와 술자리에 불러주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겁니다.)




아무튼 눈치 없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아동 교육과 심리 전문가들이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게 칭찬을 할 때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과 노력을 칭찬해주어야 한다고요. 받아쓰기를 100점 맞은 일보다는 매일 일기를 세 줄 이상씩 쓴 꾸준함이 아이들에게 대단함으로 기억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단하다’는 단어의 뜻을 제 마음대로 쓰는 것이 혼동되신다면, ‘멋짐’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일이라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잘생긴 얼굴을 갖는 일, 만능 스포츠맨이 체육대회를 휩쓰는 일, 회사에서 승진을 하는 일,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는 일,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일, 도박성 투자로 큰돈을 버는 일. 과연 어떤 일이 멋지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모든 일은 주어진 것과 이뤄내는 것의 혼재이기 때문에 무엇이 성취이고 무엇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습니다. 결과는 재능과 노력을 둘 다 요구하고 그 비율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다만 저는 많은 사람들의 철학 속에 대단함과 멋짐이 조금 더 과정과 맥락의 영역에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는 엄청나게 뛰어난 암기력을 갖는 일보다는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꿈꾸지만 주저할 법한 일을 계획하고, 꾸준히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별 고민 없이 마음껏 소비하며 다녀온 화려한 관광보다, 삶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고심하고 포기할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수없이 선택해 가며 자신의 취향을 탐구하려 노력한 이의 여행이 제겐 ‘멋짐’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기에 멋진 것은요, 꼭 대단한 일이 아닐 때도 있는 법입니다.




p.s.

가슴이 큰 남자는 좀 대단한 성취일 수 있는 것이지만, 여자의 가슴이 큰 것은… 칭찬받고 본받을 일은 아니다- 이것이지요.

제 취향과는 별개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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