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이탈리아 남부 -2
다시 이탈리아를 올 수 있게 되었다.
이탈리아에 올 때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깨끗한 하늘이다. 우리나라는 이웃을 잘 못 만나서 그런 건지,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 건지 맑은 하늘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탈리아에서 맑은 하늘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작은 도시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작은 도시일수록 하늘은 좀 더 파랗고 깨끗하다. 오늘은 바를레타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이탈리아 반도를 보면 목이 긴 장화처럼 생겼는데 장화 뒷굽에 해당하는 곳이 풀리아(Puglia) 주이다. 바를레타도 이곳에 있다.
< 바를레타 박물관: 예전엔 도시를 지키는 성채, 근대에는 군사학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
로마 테르미니역 지하에 있는 마트에 들러서 아침거리를 사가지고 기차에 올랐다. 호텔에서 나오는 조식을 먹고 나오면 될 걸, 굳이 뭔가 번거롭게 일을 하고 있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이라 기차 안에서 군것질이 하고 싶어졌다. 이탈리아 장거리 기차여행에는 역시 파니니가 제격이다. 파니니는 빵사이에 프로슈토와 치즈, 상추 같은 채소가 들어간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간편식이다. 바삭한 너트가 박혀 있는 초콜릿과 물도 잊지 않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같은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이 탄 것 같은데 이 양반들 자기 자리를 못 찾는 건지 우왕좌왕하신다.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왜 내 자리에 당신이 앉아 있느냐’며 투덜거리더니 대충 빈자리에 앉아 가는 느낌이다. 동네 이장님처럼 보이는 분이 왔다 갔다 하면서 ‘철수 엄마는 여기에 앉아 가고, 영희 아빠는 그 옆에 앉아 가시면 됩니다.’ 조율을 하고 있다. 시골에서 로마로 구경을 왔다가 돌아가는 것일까. 결국에 역무원들이 와서야 해결이 되었다. 해맑은 얼굴의 역무원이 표를 검사하더니 웃으면서 뭔가 설명을 한다. 갑자기 모두 일어나서 우르르 움직이는 걸 보니, 아무래도 열차칸을 잘 못 탔나 보다.
확실히 이탈리아 사람들이 서로 떠들 때는 뭔가 정신이 없다는 느낌이 든다.
< 바를레타 >
바를레타는 조그마한 도시라서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이곳이 심심해지면 주변 도시를 둘러봐도 괜찮을 것 같다. 30분마다 주변 도시로 나를 데려다줄 기차도 있으니, 가벼운 기분으로 마실 가듯이 옆 도시 구경도 가도 좋겠다.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주저앉아서 멍을 좀 때려도 좋겠지. 유명한 대도시에서는 소매치기도 조심해야 하고 볼거리가 많아서 괜히 마음이 바빠지기도 하지만 이런 작은 도시에서는 바쁠 일도, 경계할 일도 없다. 오히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의아해할지 모른다. ‘아니, 이 친구 이런 곳에서 뭐 하는 거지? 혹시 길을 잃은 건가?’하는 눈빛이긴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을 것이다. 시골사람들이라서 그럴 테지. 한국사람이 이런 곳을 오는 것도 아주 드문 일일테고.
< 바를레타 두오모: 카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이 보이면 들어가서 조용히 앉아 본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경이로운 건축물을 만날 때마다 겸손을 생각한다 >
이탈리아 토스카나에서 이름도 기억하기조차 어려운 시골역에 가야 할 일이 있었다. 기차 검표원조차 티켓을 보면서 이곳에 가는 것이 확실하냐고 몇 번을 물었다. 이런 걸 물어볼 때 예상을 했어야 하는데, 역 앞으로 나오니 시간여행을 했나 싶을 정도로 ‘레트로’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역 앞 공터에 당연히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택시정류장이 보이지 않는다. 택시는커녕 차도 별로 지나다니지 않는다. 동네 꼬마 아이들만 낯선 이방인이 신기했던지 자전거를 타며 빙글빙글 우리 주변을 돌고 있다. 그중 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손짓을 하니 환한 웃음과 함께 다른 녀석들도 우르르 달려온다. 혹시 택시를 어디서 탈 수 있냐고 물으니 엉뚱한 질문을 한다.
“영어 할 줄 알아요?”
“응?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이 영어인데…ㅋㅋ”
아마도 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써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택시’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더니 알아들었다는 표정이다. 따라오라는 시늉을 한다. 꼬맹이들에게 둘러싸여 마을로 들어선다. 마을에 달랑 하나 있을 것 같은 카페로 데려간다.
“아 놔. 카페 아니고 택시라고”
‘아, 알고 있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고 카페로 들어간다. 우리가 들어서는 순간 동네 할배들이 일제히 우리를 바라본다. 이 꼬맹이가 무어라고 설명을 했는지 모르지만 카페 주인이 알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얼른 프린트해 온 나의 목적지를 전해준다. 카페 주인 ‘오케이’라고 하더니 어디엔가 전화를 건다. 한참을 수다를 떤다. 나를 쳐다보며 웃는 얼굴을 보면 대충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하고 있나 보다.(물론 이탈리아말을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나의 상상이다)
‘파올로, 잘 지냈어? 그레타는 잘 있고? 아이들은 어때? 나? 나도 잘 있지. 아 글쎄 우리 집 암탉 있잖아. 이게 바람을 피워서 난리가 났잖아. 정작 수탉은 가만있는데 다른 암탉들이 쪼아대는 통에 내가 따로 꺼내서 키워야 한다니깐. 아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니깐… 불라 불라 불라.’
그러다 내 얼굴을 한번 보고 눈을 찡긋하며 웃는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너 지금 시간 되지? 여기에 네 손님이 있어. 말하자면 복잡한데… 또 불라 불라 불라’
이렇게 이십여분의 통화가 끝나고 나서 모든 게 다 정리되었다는 표정이다.
“깝훼 Caffe?”
“씨, 그라찌에 Si, Grazie!” (내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탈리아 말이다. ‘감사합니다’는 아주 잘할 수 있다)
독한 에스프레소(이탈리아에서 카페라고 하면 에스프레소 외에 다른 것을 떠올리지 않는다) 한 잔을 홀짝이며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꼬맹이들에게는 카페에서 팔고 있는 초콜릿을 선물한다. 드디어 택시가 오고 카페주인과 파올로가 한참을 수다를 떨고 난 후에야 목적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바를레타를 여행하는 동안, 토스카나에서 그랬듯이 이곳 사람들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말만 하라구. 우리는 언제나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니깐.’
정말 부담되는 눈빛이 아닐 수 없다.
기차밖 풍경을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었다. 딱 보면 목초지처럼 보이는 들판과 언덕인데 ‘소’가 없다. 도대체 ‘소’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스위스를 기차를 타고 지나가다 보면 목초지에는 의례 소를 몇 마리씩 풀어두었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목초지에 소를 방목하는 것은 불법이라도 되는 것일까?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한 마리도 볼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이탈리아도 공장형 사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일까?
< 기차 밖 풍경 >
한참을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으니 지루해져서 잠도 좀 자고, 가져간 책도 읽고 또 졸고 그러다가 드디어 바를레타에 도착했다. 로마에서 출발한 지 3시간 30분 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