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 도보여행 - 6
이틀간의 도보여행을 무사히 끝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왔던 길이 쉽지 않았던 만큼 돌아가는 길도 꽤나 번거롭다. 몬테풀차노에서 몬테풀차노 기차역까지 가는 시간표를 미리 구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비교해 보자면 신경주역에서 경주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몬테풀차노도 그러하다.
시간을 모르는 상태라서 일찍 길을 나섰다. 버스터미널은 역사지구와 바로 근접해 있다. 도착해서 시간표를 확인해 보니 8:35분 출발. 이외로 몬테풀차노 기차역행 버스가 없어서 당황했다. 다음번 버스는 13:45분에나 되어야 있다. 이 동네 사람들은 몬테풀차노역을 별로 이용하지 않는가 보다. 내가 걸어온 부온콘벤토, 피엔차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괜히 반갑다.
버스가 오려면 1시간이나 남았다. 터미널 매표소에서 커피와 간단한 아침식사용 빵을 팔고 있다. 아니, 그 반대인가? 카푸치노와 크로와상 한 개를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도착할 때마다 학생들이 한가득씩 나온다. 그런데 이 녀석들 학교로 바로 가지 않고 터미널 곳곳에 앉아서 떠들고 장난치고 있다. 학교 일찍 가봐야 좋을 것 없으니 이곳에서 죽치다가 시간 맞춰서 가려는 것일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몬테풀차노역에 도착을 하긴 했는데, 플랫폼에 방향표시가 되어있지 않다. 도대체 둘 중 어느 플랫폼으로 시에나로 가는 기차가 들어오는 것일까. 역무원에게 물어보려 아무리 역을 뱅뱅 돌아도 역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옆구리로 사람들이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더니 이곳은 카페. 그래도 밖에 벤딩머신은 있어서 표를 살 수는 있겠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철길 건너편에 사람들이 있다. 지하도를 건너가서 물어봐야겠다.
“스쿠시. 파를레 잉글레세, 실례합니다. 영어 할 줄 아세요?”
“노”
“...”
“(더듬더듬 이탈리아어와 영어를 섞어서) 제가 시에나를 가는 길인데, 꽐 비나리(어느 플랫폼)로 가야 하나요?”
아주머니에게 ‘시에나’와 ‘꽐 비나리’가 전달되었나 보다. 내 손을 끌고 기차시간표가 나와 있는 테이블을 보여주며 여기가 맞단다. 자기도 시에나 가는 길이라고 한다(고 한 것 같다). 옆에 있던 푸짐한 몸집의 아저씨와 아줌마(미국사람이다)가 나를 보며 자기들은 시에나 반대방향으로 갈 거라고 하며, 어떻게 같은 플랫폼일 수가 있지 하며 의아해한다.
이탈리아 아줌마 다시 기차시간표를 손으로 집어가며 건너편 플랫폼으로 가라고 열심히 설명한다. 미국인 부부는 집처럼 커다란 가방 3개를 밀고 끌며 낑낑거리며 건너편으로 가고 있다. 아줌마는 좋은 일 했다는 듯이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활짝 웃으신다. 나도 같이 웃어주었다.
이렇게 싱겁게 끝나면 이탈리아가 아니지. 조금 있다 방송이 나온다. 물론 이탈리아 말이다. 아주머니 열심히 듣더니 내 손을 잡아끌고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는 시늉을 한다.
‘아, 열차 플랫폼이 바뀌었구나’
놀랍지도 않다. 꽤 무거워 보이는 아주머니의 가방을 뺏어 들고 둘이 같이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지하도를 달려 계단을 헉헉대며 올라가니 열차가 저만치서 들어오고 있다.
어안이 벙벙한 미국인부부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플랫폼이 바뀌었대. 너네 다시 저쪽으로 건너가야 한 대” 소리치며 기차에 올라섰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뭐라 투덜거리면서 다시 커다란 가방 3개를 들고 건너편으로 가고 있는 미국인 부부를 보면서 털썩 (아무 빈) 자리에 앉는다. 확실히 이탈리아 시골역은 다이내믹하다는 느낌이다.
이 기차가 시에나로 가는 건 알겠는데, 혹시 내가 딴짓하는 사이 내리는 타이밍을 놓칠까 싶어서, 아주머니에게 내릴 때 나한테 알려달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아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찰떡처럼 알아들었는데. 아무리 설명을 해도 도통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시다.
먼저 타고 있던 부부(이번엔 영국이더라)중 남편이 나를 툭툭 치며 '걱정 마라. 이 열차 종착역이 시에나'라며 안심을 시켜준다. 그러면서 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 같은 아주머니에게 그걸 부탁하냐고 묻는다. 방금 전에 있었던 소동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박장대소를 한다. 마침 지나가던 역무원이 우리 이야기를 듣더니, 자기도 그 미국인 부부 봤다면서 마구 웃어댄다. 플랫폼 건너편에 가서 잘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란다.
아주머니가 이제 역무원을 붙잡고 말을 건다. 둘이서 뭐라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아예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면서 하하 호호하고 있다. 확실히 이탈리아 시골열차는 정신이 없다는 느낌이다.
귀족풍의 영국인 부부는 나의 행색이 궁금한 듯하다. 지난 이틀간의 도보여행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배낭하나에 일주일치 짐을 모두 챙겨서 40km를 걸었다고 하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호주할머니들 이야기할 때는 ‘크레이지’를 연발한다. 확실히 귀족풍 영국인은 신발에 진흙 묻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시에나역에서 다시 피렌체역으로 가는 기차를 갈아타야 한다. 기차 시간이 1시간 정도밖에 남지 않아 그냥 역내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여행메모를 정리하고 있다. 피렌체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시장구경을 한 후, 볼로냐로 가고 있다. 볼로냐에서 다시 리미니, 오늘의 최종목적지로 가고 있다.
<피렌체 중앙시장>
피렌체-볼로냐 구간, 볼로냐-리미니 구간은 프레차로사(우리로 말하자면 KTX)로 가는 구간이다. 도착시간 5분 전에(혹시 몰라서) 알람을 맞추어두고 잠을 청하지만 잠은 오지 않는다.
리미니는 이탈리아에서는 강릉처럼 유명한 휴양도시이다. 기다란 백사장에 여름이면 해수욕을 즐기려는 이탈리아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로즈아일랜드>라는 영화가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탈리아 코메디인데, 리미니 앞바다에 인공섬을 만들고 공화국을 선포한 괴짜들의 이야기이다. 흥미롭다
먼저 도착한 회사동료들과 저녁식사를 시작으로 여행은 끝나고 출장(회의)이 시작되었다. 회의를 하는 이틀 동안 내리 비가 왔다. 다음날은 볼로냐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좀 걱정이 된다. 다음날 아침, 역으로 가는 지하도가 물에 잠겼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기차가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지난밤 강물이 범람해서 일부 고속도로와 지방도로 그리고 기차선로가 잠겼단다.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마이애미 브라더스 (라틴 브라더스)가 자기들도 오늘 무조건 볼로냐에 가야 한다면서 마침 렌트한 차량에 한자리가 남으니 같이 가겠냐고 한다. 무슨 소리. 당연히 무조건 같이 가야지.
왜 마이애미 브라더스라고 하는가 하면, 마이애미에 근거지를 두고 계신 큰 형님과 멕시코에서 근무하고 있는 작은 동생 그리고 아르헨티나에서 최근에 합류한 막내. 이렇게 셋이서 회의 내내 붙어 다니는 걸 보고 내가 그냥 붙인 별명이다. 본인들은 모른다. 물론 실제 형제는 아니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니 편해서 같이 다니는 거다.
넷이서 호기롭게 길을 찾겠다고 떠난 길. 이탈리아는 우리를 그냥 호락호락하게 보내주지 않는다. 가는 길마다 막혀있고, 지방경찰은 우회를 유도하고, 우회를 유도한 곳으로 가면 또 막혀서 다시 돌아가라 하고. 평소 1시간이면 갈 거리를 3시간째 돌아다니고 있다. 귀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은 이제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점심때도 되어가니 Forli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Forli도 범람하는 강물로 직격탄을 맞았다. 동네는 완전히 진흙바다(으, 이놈의 진흙)가 되었고, 거리마다 사람들이 청소를 하느라 분주하다. 그래도 강물이 역사지구는 피해 갔다. 다행히 문을 연 식당이 있다.
여행사에 카톡을 보내 사정설명을 하고 오늘 비행 편을 취소하고 내일로 다시 예약을 부탁한다. 다행히 한 자리가 남아있어서 예약은 했는데, KLM 한국지점은 모두 퇴근을 해서 KLM 이탈리아지점에 전화를 해서 재발행 요청(?)을 해야 한단다.
전화를 했더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감부찌(나의 이탈리안 카운터파트너)에게 연락해서 예약정보, 신용카드정보 다 보내주고 나 점심먹을 동안 다 해결해 놓아라 부탁(이라 쓰고 협박이라 읽음)한다. 한숨 돌리고 점심을 먹고 와인도 한잔 들어가니 갑자기 마음이 느긋해진다. 큰 형님 왈, ‘우리가 언제 이런 일이 아니면 Forli를 와 보겠니.‘
확실히 라틴 브라더스는 여유가 몸에 배어있는 것 같다.
계획에 없던 볼로냐 1박 추가. 저녁이 되자 다시 비가 슬금슬금 내린다.(아유, 이놈의 비) 오랜만에 들른 볼로냐 시내를 돌아볼까 하다가 만사가 귀찮아졌다.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감부찌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일 볼로냐 공항에 파업이 예정되어 있단다.
“아, 증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면파업은 아니란다. 내일 공항에 일찍 가봐야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다음날 다행스럽게도 KLM은 예정대로 이륙하고 암스테르담에서의 환승도 무난해서 마지막에 모든 일이 확 풀려버리는 느낌이었다. 긴장도 같이 확 풀려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