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리뷰/왓챠,넷플릭스 로맨스,재즈 영화 추천/결말 해석]
개봉일 : 2012.07.05. (한국 기준)
감독 : 우디 앨런
출연 : 오웬 윌슨, 마리옹 꼬띠아르, 레이첼 맥아담스, 애드리언 브로디, 카를라 브루니, 캐시 베이츠, 톰 히들스턴, 레아 세이두
아름다운 파리에서 즐기는 몽상의 밤
논란으로 인해 ‘우디 앨런’감독 영화는 웬만하면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솔직히 우디 앨런 감독의 멋들어지는 재즈 음악과 ‘톰 히들스턴’의 피츠제럴드가 너무 그리워서.. 오랜만에 <미드나잇 인 파리>를 꺼내봤다.
아침과 저녁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도시 ‘파리’, 흐린 날, 맑은 날, 비 오는 날 언제 거닐어도 아름다운 도시 ‘파리’.
나는 아직 파리에 다녀온 적이 없다. 장시간 비행이 무섭기도 하고, 그만큼 큰돈을 쓸 배짱도 없으니.. 직접 가본 적이 없어서인지, 파리에 대한 로망만 한가득이다. 실제로 파리에 다녀온 지인들은 궁금해하는 나에게 아름답긴 하지만 지하철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생각만큼 살기 좋은 곳은 아니라는 식의 후기를 남겨주곤 했는데, 그런 후기를 한 3번쯤 들은 후, “아 현실은 그런 건가?” 싶다가도 이 영화를 보면 현실 따위는 저 멀리 던져버리게 된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인 ‘길’은 할리우드에서 일하고 있는 대본작가다. 그의 꿈은 파리에 머물며 대본이 아닌 나만의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는 가끔씩 파리에 방문하지만, 로망은 사라지긴커녕 눈밭에서 눈덩이를 굴리듯 점점 커져만 간다. 고흐가 ‘파리의 교외’, ‘파리의 지붕들’과 같은 작품 속에 담아둔 도시이자 헤밍웨이가 7년간 머물렀다는 도시. 그리고 피카소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는 도시 ‘파리’. 말만 들어도 마음이 콩닥콩닥 뛰어온다. 주인공 길은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눈이 닿는 곳마다 예술작품이라며 감탄한다. 물론 영화를 보는 나도 그랬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첫 장면은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흐린 날, 맑은 날, 비오는 날의 파리 모습이다. 3분간 지나가는 파리의 모습과 부드러운 선율.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가 궁금하다면 일단 틀어보라. 조금 오버하자면, 3분 내에 이 영화에, 파리라는 도시에 반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미술사와 문학사를 잘 알지 못해도 영화를 즐기기엔 부족함이 없을듯하지만,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피카소, 루이스 부뉴엘, 맨 레이 등의 예술가들을 잘 알고 있다면 영화를 더욱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서 예술가들과 역사를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그리고 각 인물에 맞춰 주인공 길이 건네는 미래의 작품 아이디어, 예술가들이 길에게 건네는 말들이 정말 센스 있고 적절하게 짜여 있어서, 그들의 작품을 한 번씩 더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듯하다.
약혼자 '이네즈'(레이첼 맥아담스)를 두고 홀로 파리의 밤거리를 배회하던 '길'(오웬 윌슨)은 종소리와 함께 홀연히 나타난 차에 올라타게 되고 그곳에서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과 조우하게 된다.
그날 이후 매일 밤 1920년대로 떠난 '길'은 평소에 동경하던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어 꿈같은 시간을 보내게 되고 헤밍웨이와 피카소의 연인이자 뮤즈인 ‘애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를 만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길’은 예술과 낭만을 사랑하는 매혹적인 그녀에게 빠져들게 되는데…
세기를 초월한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어디에도 이런 도신 없어! 1920년대 비 오는 파리를 상상해봐
미국에 살고 있는 극작가 ‘길’과 그의 약혼녀 ‘이네즈’는 이네즈의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파리에 도착한다. 길은 파리에 살고 있진 않지만,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하는 남자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예술작품, 온갖 예술 분야에 한 획을 그은 위인들이 살았던 도시 ‘파리’. 이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진 그는 특별한 도시, 파리의 정취를 흠뻑 느끼고 있다.
길은 신이 나서 파리로 이사를 오자고 말하고, 이네즈는 “난 미국을 떠나선 못 살아.”라며 치를 떤다. 모네가 그림을 그리고, 살던 곳이 시내에서 30분인 도시. 길은 자신이 이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에 겨워 보인다. 그는 성공하면 꼭 여기서 살겠다며 파리지앵의 꿈을 꾼다.
이네즈와 길은 저녁 식사 중 우연히 이네즈의 친구 폴과 캐롤을 마주친다. 이네즈는 길에게 ‘폴은 박학다식한 친구’라며 같이 약속을 잡자고 설득한다. 박학다식하고 이성적인 남자 ‘폴’, 그리고 모두가 몽상가라고 칭하는 감성적인 작가 ‘길’. 이네즈는 베르사유에서 온갖 지식을 뽐내는 폴과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캐롤을 보며, 우리도 질 수 없다는 듯 길의 새로운 소설을 자랑한다.
길이 새로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은 노스탤지어 샵을 운영하는 남자다.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고 기리는 사람. 길은 자신을 투영하여 소설 속 주인공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소설 소재를 탐탁지 않아 한다. 폴과 캐롤, 이네즈는 노스탤지어 샵의 물건은 누가 사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과거에 사는 사람이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길과 이네즈, 그리고 폴과 캐롤. 네 사람은 함께 베르사유를 거닐고, 로댕의 조각상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다. 폴은 가이드에게도 자신의 지식이 맞다고 우긴다. 하지만 이네즈와 캐롤은 그의 그런 모습 또한 믿음직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이네즈는 자연히 폴에게 끌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듯 이네즈는 길의 옆이 아닌, 길을 일행의 뒤쪽에 놔둔 채 앞장서서 걷는다.
이네즈는 길이 자기 글에 대해선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다며, 폴에게 제3자의 의견을 말해달라고 부탁한다. 길의 의사는 상관없이 말이다. 길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상당히 진중한 인물이다. 이네즈는 그런 길의 마음을 끝없이 건드리고, 길은 홀로 이른 귀가를 한다. 파리의 밤을 흠뻑 즐기던 길은 자기도 모르는 새 인적이 드문 골목에 들어서게 되고, 그 순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TV 속에서만 봤던 오래된 차가 길에게 다가온다.
파리의 밤을 즐겨봅시다!
길이 그리워하던 1920년대의 파리. 길이 생각하는 파리의 예술적 황금기 1920년. 길은 마법처럼 펼쳐진 밤을 즐긴다. 존경하는 작가인 헤밍웨이, 그의 친구 피츠제럴드.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존경하는 작가가 내 앞에 앉아있고, 곧 나의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길은 술에 취해 헛것을 본 게 아닐까 자신을 의심해보지만, 이건 너무도 생생하다. 길은 이 꿈같은 경험을 이네즈와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음날 자정. 기다리다 지친 이네즈가 돌아가고, 또다시 황금 같은 밤이 찾아온다. 마치 진정으로 파리를 사랑하고, 그 시절을 동경하는 자만을 기다렸다는 듯 말이다. 길은 두 번째 밤에 스타인 부인과 피카소, 그리고 미묘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아드리안을 만나게 된다.
과거는 마력이 있거든요
1920년에 살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 아드리안은 피카소와 헤밍웨이의 뮤즈다. 길 또한 미묘한 그녀의 매력에 반하게 된다. 거기에 나의 소설을 좋아해 주고, 과거를 동경하는 여성이라니. 아드리안이 그리워하는 과거는 길처럼 1920년대가 아닌 그 이전이지만, 길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쁜듯하다.
같이 걷는 거 아주 좋아요.
길과 아드리안은 천천히 발을 맞춰 밤거리를 걷는다. 이네즈와는 앞뒤로, 아드리안과는 발을 맞춰 걷는다. ‘다른 시대 여자와 사랑에 빠지다’..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다. 이전 시대에 살던 위인을 동경하고, 그를 추억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 인물과 함께 밤거리를 거닐고, 눈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은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로댕은 부인도 정부도 사랑했다’는 가이드의 말에 마음을 정한다. 자정이 넘어간 시간엔 아드리안과 사랑하고, 현재로 돌아오면 이네즈를 사랑하면 될 것이라고 말이다. 어쩌면 그저 꿈일지도 모르는 그 시간, 잠시 또 다른 사랑을 하면 되는 것이다.
입 맞추는 동안엔 내가 불멸의 존재 같았어요
헤밍웨이는 길에게 “열정적인 사랑으로 죽음을 마음속에서 몰아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길은 그의 이야기를 기억하듯, 아드리안과 입을 맞추며 마음속에서 죽음을 몰아내고, 불멸의 존재가 된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만큼 열정적인 사랑을 하던 길과 아드리안은 함께 또 다른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아드리안이 동경하던 ‘벨에포크(1914년 1차 세계대전 이전)’시대. 아드리안은 길이 그랬듯,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과 피카소가 동경하던 예술가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 예술가들은 또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그리워한다.
1920년은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시대예요.
2000-2010년대를 살아가는 길은 1920년을 동경하고, 1920년에 살았던 아드리안은 19세기 말을 그리워하고, 19세기 말 예술가들은 또 그 이전 시대를 그리워한다. 아드리안은 20년대가 가장 황금기였다는 길의 말을 듣고 “그건 현재잖아요. 지루해요.”라고 말한다. 우리는 항상 불만스러운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과거라는 단어와, 내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한 환상은 특정 시대를 ‘아주 반짝이는 것’으로 포장해내곤 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삭막하고 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는 2010-20년대 또한 언젠가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글을 잘 쓰려면 환상을 없애야 해요.
길은 벨에포크 시대에 남겠다는 아드리안을 보며 자신이 갖고 있는 과거에 대한 환상이 그리 특별하고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길은 헤밍웨이가 했던 말처럼 환상을 일부 정리하고,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헤밍웨이와 스타인 부인이 마지막으로 해준 소설에 대한 첨언 (“여자가 바람피우는 걸 모르는 게 이해가 안가”)을 듣고, 이네즈의 외도를 눈치챈 길은 이네즈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길의 소설 속 남자는 위에도 말했듯이 길 자신이고,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시선에 비친 주변인들을 투영해냈던 것이다.
사실 파리는 비 올 때 가장 예뻐요.
이네즈와 이별을 결정한 후, 호텔에서 뛰쳐나온 길은 파리의 거리를 정처 없이 헤맨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여전히 헤매고 있던 길 앞에 익숙한 얼굴을 한 여성이 나타난다. 그녀는 ‘콜 포터’의 LP 판을 팔던 점원 ‘가브리엘’이다. 1891년 출생, 1964년 사망한 작곡가 ‘콜 포터’. 길의 주변인들 중엔 ‘콜 포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브리엘은 새로운 앨범이 들어왔다며 길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건 가브리엘도 비 오는 파리를 좋아한다는 것.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비가 내린다. 길은 또다시 파리의 황금 같은 밤을 걸으며 마음껏 몽상에, 사랑에 빠진다.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리는 순간 나타난 가브리엘이 또 다른 시간 여행자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론 가브리엘과는 낮 시간에도 마주쳤기 때문에 시간 여행자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브리엘이 등장한 순간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린 건, 가브리엘이 길의 또 다른 황금시대를 만들어줄 인물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종이 12번 울리면 길이 생각하는 황금시대, 그리고 아드리안이 생각하는 황금시대로의 시간 여행이 펼쳐졌었다. 하지만 길은 “환상을 없애야 해요”라는 말을 남기고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반복적인 시간 여행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나만의 황금시대로 만들 순간이 아닐까
정말 이런 도시는 또 없다. 마음껏 몽상에 빠지게 만드는 도시, 막연한 동경을 품게 만드는 도시. 카메라 속에 담긴 아침에도, 밤에도 아름다운 도시 ‘파리’. 지금 당장 유럽으로 떠날 순 없으니..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며, 오늘도 파리에 대한 환상을 키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