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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경 Jun 28. 2024

서스펜스의 탈을 쓴
순하고 희망적인 드라마 한편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리뷰, 해석

주요 내용

- 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소개, 줄거리

- 1,2편을 봐야 할까? 전작과의 연관성, 차이

- 착한 아포칼립스 영화

- 절망 뒤에 따라오는 희망

-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이 말 하는 '인류애'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 (A Quiet Place: Day One, 2024)

서스펜스의 탈을 쓴 순하고 희망적인 드라마 한편

개봉일 : 2024.06.26.

관람등급 : 15세 이상 관람가

장르 : 스릴러

러닝타임 : 99분

감독 : 마이클 사노스키

출연 : 루피타 뇽, 조셉 퀸, 디몬 하운수, 알렉스 울프

개인적인 평점 : 3.5 / 5

쿠키 영상 : 없음


평균 소음 데시벨 90. 비명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시끄럽고 복잡한 도시 뉴욕 시내 한가운데에 소음에 반응하는 무시무시한 괴생물체들이 나타난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콰이어트 플레이스 2>가 이 세계관에서 느낄 수 있는 서스펜스, 공포감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라면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첫째 날 이후 살아남은 이가 느끼는 삶에 대한 희망과 절망, 인류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1,2편을 모르고 관람해도 괜찮을 만큼 전작들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는 이야기고 영화의 결도 무척 다르다. 초반부는 전작과 비슷하게 쫀득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착착 쌓아가며 진행되지만 후반부로 가면 세계관보단 인물이 가진 드라마에 집중하는 분위기로 전환된다.

1,2편은 괴생물체가 자주 등장하며 끊임없이 형성되는 긴장감을 중심에 두고 주인공 가족이 삶의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줬다면, 이번 편은 괴생물체가 나타난 세계관으로 밑그림을 그려두고 주인공 사미라가 이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 후 느끼게 되는 감정들로 서사를 채워가는 형식이다.

배우의 호연과 매력적인 신 스틸러, 일부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적 일렁임 등..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이라는 영화 자체는 괜찮았지만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프리퀄'로서의 매력은 딱히 느껴지지 않는다. 프리퀄이라기엔 세계관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전무한 수준이고 서스펜스가 주를 이뤘던 전작들에 비해 늘어지는 느낌이 있다.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자세히 풀리는 편이 아니라 완전히 몰입하기 어렵기도 했고 괴생물체가 소음에 반응한다는 설정에서 '소음'의 기준이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한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기도 했다.


콰이어트 플레이스라는 시리즈에 어떤 것을 기대했는지에 따라, 평소 캐릭터의 감정을 얼마나 흡수하는 스타일인지에 따라(영화가 상당히 감정 호소형이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릴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서스펜스, 스릴러 영화로서의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등장인물들 사이의 드라마만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어쨌든 희망을 찾아가는 착한 아포칼립스 영화


영화의 초반부, 사미라가 버스를 타고 뉴욕 시내로 향하는 장면에서 도시의 여러 모습이 비친다. 그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여러 묘비석과 건물이 한 앵글에 담기는 장면이다. 후방으로는 다양한 모양, 높이의 건물 윗부분이 보이고 전방에 보이는 언덕 위엔 그 건물들을 그대로 축소시킨듯한 다양한 모양의 묘비석과 무덤들이 보인다.

극중 뉴욕은 가장 화려하고 시끄러운 도시이자 죽음을 맞이한 도시다. 하늘에서 괴생물체가 우수수 떨어지고 그들은 시민들을 종잇장처럼 찢어버린다. 당황한 군대는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도시를 봉쇄하기로 결정한다. 괴생물체가 우글거리는 고립된 뉴욕. 그것들의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진 모르지만 아무튼, '종말이 다가온 거라'는 에릭의 말대로 최소 뉴욕 하나쯤은 종말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슈퍼 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망과 공포에 잡아먹힐 이런 상황 속에서, 콰이어트 플레이스 세계관 속 인물들은 열심히, 마침내 살아갈 이유를 찾아내고 영화엔 절망과 희망이 뒤섞인다. 그리고 결국 희망이 이긴다.

1,2편의 주인공이었던 애보트 가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새로운 생명과 서로를 생각하며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들은 쉼 없이 다가오는 위협에 반항하며 더더욱 끈질기게 삶을 붙잡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의 주인공 사미라는 애보트 가족과는 다르다. 그녀는 괴생물체가 나타나기 전부터 삶의 의욕을 대부분 잃어버린 암 환자다. 사미라는 처음부터 희망을 붙잡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생존자 에릭을 만나고, 위험한 뉴욕에서의 첫째 날을 보낸 이후 그녀는 절망과 희망을 번갈아가며 느끼게 된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라는 다른 이들의 희망과는 조금 다른 자신만의 희망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영화는 절망과 희망을 오가는 그녀의 마음에 조용히 귀 기울인다.

1,2편과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까지. 총 3편의 시리즈물을 보며 공통적으로 든 생각이 있다. 이 시리즈는 참 착하고 희망적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희망을 찾고,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가장 꼴 보기 싫은 민폐 캐릭터, 인간성을 잃어버린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충격에 기절한 타인을 안전한 실내로 끌어오고 안전한 곳을 찾아 달려온 이의 손을 잡아주고 외면하지 않는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 째날>은 3편의 시리즈 중 가장 이러한 면이 두드러지는 착한 영화였다.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할까.


* 아래 내용부턴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보편적인 희망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미라


"기회가 한 번 더 왔네요."

간호사는 사미라에게 함께 시내에 가는 것을 제안하며 그녀에게 '기회가 한 번 더 왔다'라고 말한다. 사미라가 시내에 갔을 때 괴생물체 출현이라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간호사의 말 그대로 사미라는 이 사건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시내로 출발하기 전, 호스피스에 있는 사미라의 모습은 축 처져있다. 사미라는 삶에 대한 의욕을 대부분 상실한 상태다. 텅 빈 옷장은 그녀의 마음을 대변해 주는듯하다. 희망을 가지려 할 때마다 밀려오는 통증과 현실, 희망을 갖고 날아보려 해도 현실이 그것을 모두 터트려버린다. 그녀는 자신과 닮은 추락하는 마리오네트를 지켜보다 연극 관람을 중도 포기한다. 그리고 이어 괴생물체의 습격을 받게 된다.


사미라가 처한 상황은 절망적이다. 괴생물체가 가득한 뉴욕, 터져나가는 다리들, 불타듯이 아픈 몸, 먼저 떠난 가족들과 텅 빈 집. 그녀는 '살고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지 않다. 많은 시민들이 살아남기 위해, 도시를 탈출하기 위해 항구로 줄지어 이동할 때, 사미라는 그 행진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절망을 벗어나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반대로 걷는 그녀는 예고된 절망 속으로 진입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의 반대편에 있는 감정들을 느끼며 변화한다.

절망과 희망이 교차하는 이야기


극 중에선 절망과 희망이 끊임없이 교차한다. 서비스캣인 프로도가 사미라의 품에서 벗어났다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는 것처럼 희망도 사라졌다 생겨나길 반복한다.


유일한 친구였던 간호사가 죽자 에릭이라는 새로운 친구가 찾아오고, 진통제 효과가 떨어져 괴로워하던 날 밤엔 에릭이 새로운 진통제를 구해와 붙여주고 '내가 여기 있다'며 사미라의 곁을 지켜준다. 사미라가 타버린 팻시스 피자 가게에 절망하자 에릭은 어디선가 피자를 구해와 박스에 직접 팻시스 피자를 써서 건네준다. 사미라가 항상 지니고 있던 아이팟은 시간이 지나 방전되었지만 재즈클럽에서 새롭게 충전된다.(여기서 아이팟이 재충전 되는 건 재즈 클럽에서 사미라가 새로운 의지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극 중에서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미라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된다. 그녀는 첫 친구였던 간호사 덕분에 호스피스의 병동을 벗어나 시내의 작은 극장으로, 괴물의 출현과 간호사의 죽음을 겪으며 조용한 뉴욕의 한복판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에릭을 만나 함께 도움을 주고  받으며 그토록 그리워했던 재즈 클럽에 도착하고, 이어폰을 뽑은 채 좋아하는 노래로 도시를 가득 채우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만의 세계'를 즐긴다. 사미라는 방향성 없이 온몸을 짓누르던 소음이 사라진 도시에서 고통을 내려놓고 자신을 마주한다. 그리고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절망 뒤엔 희망이 따라오듯 죽음 뒤엔 새로운 삶이 따라온다. 사미라는 에릭의 도움 덕분에 무언가를 갈망하는 새로운 날을 살게 되고 그 보답으로 에릭의 탈출을 돕는다. 에릭은 사미라의 희생 덕분에 안전하게 도시를 탈출하고 그녀의 희망이었던 프로도를 품에 안은 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진통제, 편안한 신발을 건네고, 입고 있던 겉옷과 희망을 주고받는다. 두 사람이 나눈 것은 달콤한 이성애가 아닌 본능적인 인류애에 가깝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선 괴생물체가 막 뉴욕을 침공했을 때 총 12척의 배 중 2척의 배만 뉴욕을 탈출했다고 언급된다. 나머지 배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 사람들에 의해 침몰했다고 한다. 인류애는 종말을 앞둔 도시에서 가장 찾아보기 힘듦과 동시에 가장 중요한 것이다.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 날>은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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