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작가 <시선으로부터,>
아픈 아이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비명을 지르고 싶어 져서, 그러나 비명을 지를 수 있는 성격은 아니어서 머리를 통째로 다른 세계에 담가야만 했다. 끝없이 읽는 것은 난정이 찾은 자기 보호법이었다. 언제나 뭔가를 쥐어뜯고, 따지고, 몰아붙이고, 먼저 공격하고 싶었다. 대신 책을 읽는 걸 택했다.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 한 게 없었다.
*출처: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넘어지지 않을 것 같은 사람. 그게 화수였다. 균형 감각이 좋았다. 온화하면서 단호한 성격. 과거를 돌아보되 매몰되지 않고 미래를 계획하되 틀어져도 유연한 태도. 살면서 만나는 누구와도 알맞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판단력, 일과 삶에 에너지를 배분하는 감각...... 이를테면 요새 유행하는 명상 앱의 차분한 목소리를 닮았던 것이다.
*출처: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워커홀릭들만이 관리자가 되는 것인지, 관리자가 되면 워커홀릭이 되고 마는 것인지 우윤은 궁금했다. (중략) 일을 얼마나 사랑해야 하는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일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길들여지지 않는 괴물 늑대와 같아서, 여차하면 이빨을 드러내고 주인을 물 것이다. 몸을 아프게 하고 인생을 망칠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조금만 사랑하자니, 유순하게 길들여진 작은 것만 골라 키우라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출처: 정세랑 <시선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