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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ylee Oct 23. 2020

세 번째 만남에서 도망친 사연

그 소개팅이 안된 이유 (2)

지난 글(1편)에 이어, 기억에 남는 소개팅 에피소드를 기록해본다.



3. 숨겨왔던 열등감 폭발한 남자

그는 사전 연락을 주고받을 때부터 매우 신사적이었다. '소개팅 약속잡기의 정석'이랄까?

첫 만남에서도 그랬다. 재미는 없었지만, 매너 좋성실해 보였다. 나에게 조심스럽게 호감을 표현했고, 굳이 따지자면 나도 그가 싫지는 않았다.


두 번째 만남도 마찬가지.

TV에 나온 유명 맛집을 함께 가자며 '웨이팅이 있을지 모르니 천천히 오세요. 제가 먼저 가 있을게요.'라고 말하던 그. 이런 대접을 받다니! 영광이었다. 하지만  번의 만남 이후 나는 고민 빠졌다. 객관적으로 참 괜찮은 사람인데, 어딘가 정이 가지 않았다. 만나고 나면 피곤이 몰려왔다.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일까? 개그 스타일이 달라서? 아니면... 외모가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다시 일주일이 지났고, 그 또 만나자고 했다. 이번에도 고심해서 장소를 골랐다며 링크를 보내준다. 소개팅에서 이렇게 정성을 다하는 남자는 정말 랜만이다. 이 만남을 거절하면 왠지 후회할 것 같았다.


드디어 세 번째 만남.

약간의 텀을 두고 보는 거니까 더 반가울 거야, 어쩌면 내 눈에 콩깍지가 씌워졌을지 몰라.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기적은 없었다. 

그 날 우리가 찾아간 중식당은 단체 손님들로 북적였고, 입구부터 고량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탕수육이 맛있기로 소문난 집이었지만, 얼른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배가 고팠나 보다. 자꾸만 코스를 먹자고 다.

차례로 나오는 음식과 함께, 그는 대학 시절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를 소개해 준 이는 나의 회사 동료이자 그의 대학 친구, 나는 이미 주선자를 통해 그가 미국에서 학부를 마쳤다는 걸 고 있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고생을 많이 했어요. 늦 유학 가서 영어 익히랴, 공부하랴, 사람 사려고 동아리 만들고..."

"네... 고생하셨네요. 동아리는  하셨는데요?" (큰일이네. 더 할 말도 없는데 아직 요리가 한참 남았어)


힘겹게 대화를 이어가던 중, 만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피구왕 통키>가 인생 만화였다고 하며, 그에게 초등학교 때 피구 해봤는지, 혹시 초등학교도 미국에서 다녔는지 물었다. 아, 늦게 유학갔다고 했던 그의 말이 생각나며 질문을 정정하려던 순간.


자기 그의 얼굴이  굳어버린.

 

"니요. 대학교만 미국에서요.

전부터 확실하게 말씀드리고 싶었데요. , Kaylee 씨가 생각하는 그런 부자 유학생이 아닙니다

제가 미국 대학 나오고 본가가 분당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있는 집 자식으로 오해하는데 니에요. 저는요, 부모님 돈으로 어릴 때 유학 간 그런 사람이랑은 릅니다... 오해하시는 거 같아서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어요."


아... 머릿속에 경고음이 울다. 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이런 하찮은 소릴 듣고 있어야 할까?


에게서 느껴지 묘한 불편함의 정체를 알 것 같. 함부로 판단할 순 없지만 그는 부잣집 유학생들에게 피해의식이 있는 듯했다. 지난 만남에서 그가 했던 발언들도 떠올랐다. '계약직 여직원들 월급이 적어서 제가 사비로 점심을 사주고 있어요.', '지하철역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안쓰럽더라고요.' 물론 좋은 의도로 하는 말이겠지만 듣기 거북했던 발언들. 열등감을 '좋은 사람 콤플렉스'로 애써 숨기고 있는 걸까?

 

도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다. 차라리 그가 부자면 억울하지나 않지. 해고 뭐고, 더 이상 미련도 없다.

"... 저 오해한 적 없는데요. 질문이 뭐였데 이런 얘길 하시는 거죠?"

  

마침 식사도 마무리되던 타이밍. 나는 물 잔을 탁 내려놓고 "이제 갈까요?" 일어섰다. 그는 지하철역까지 같이 걷겠다고 했으나, 나는 뒷걸음질 쳤다. "잘 들어가세요"라고 말하는 동시에 나는 이미 그에게서 멀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점쟁이가 내게 말했다.

'아쉽게도 남편복이 별로 없어요. Kaylee씨보다 강한 사람 만나 잡혀 살거나, 아예 휘어잡을 수 있는 사람을 골라요'라고 하더라. 그렇다면 결혼 안 하는 게 낫겠다고 하자, 내 팔자에 결혼은 있단다. 받아들이란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초에 결혼에 큰 기대는 없었지만, 저 말을 듣고 나니 서두를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바람을 갖는다. 미련한 기대일지라도 하루빨리 만나게 되길. 뭐, 없으면 말고.  




* 이미지 출처: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6442076&memberNo=23519771&vType=VER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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