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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26. 2020

[D+262] 요동치는 아빠의 마음

8개월 아기를 보는 아빠의 심정


아기 엄마가 쓴 기고문(?)이 너무 잘 팔리면 어떡하나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걱정은 현실이 됐다. 글이 다음 메인에 걸렸다. 나도 세 번 밖에 안 걸렸는데.. 글이 올라간 지 4일 만에 이 브런치 계정에서 쓴 글 중 조회수 상위 5위권에 들고야 말았다.  

아무래도 공감의 힘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내 글은 솔직한 척했지만 은연중에 행복하고 좋다고만 적고 있었던 걸까. 음, 아무래도 기자적인 글쓰기의 한계인 것 같다(라고 자위한다).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만 적었으니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아기를 키우며 산다는 게 어찌 명랑하기만 하겠는가. 그래서 나도 적어본다. 물결처럼 요동치는 아빠의 마음.


엄마만 찾는다

아빠는 서럽다


7개월이 지나고 8개월이 지나자 아기가 사람이 됐다. 감정이 생기고 판단을 하고, 나아가 표현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물리면 먹고, 뉘어주면 자고, 보여주면 보고, 만지라면 만지는 기계 같은 아기였는데, 이제는 제 나름대로 재어보고 판단하고, 마음에 안 들면 소리도 버럭버럭 지른다.


며칠 전 주말 엄마가 외출을 했다. 아빠의 홀로 육아는 고통스럽다. 연애할 때보다 두 배, 아니 열 배는 자주 엄마가 보고 싶다. 낮이야 뭐 어찌어찌 버티겠지만 문제는 밤이다. 딸은 아직 밤잠을 아빠와 시작해본 적이 없다. 희한하게 밤잠을 잘 때만 엄마를 각별히 찾는다. 엄마가 아기 밤잠 시간 전에는 들어올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늦어졌다. 아기는 졸리고, 엄마는 없다. 비극이 시작됐다.


눈을 비비며 졸려하는 아기. 데려가 침대에 뉘어 보았다. 운다. 달래 봤다. 안 된다. 포기. 거실로 데려와 앉혔다. 그렇지만 엄마가 없는 것과 졸린 건 또 별개 아닌가. 졸린데 자기를 거실에 앉혀 놨다고 칭얼댄다. 앗 그런데 엄마도 없잖아? 급 서럽다. 입이 네모가 됐다. 찡찡댄다. 안아줬다. 찡찡댄다. 다시 뉘었다. 자기를 재우려고 한다고 짜증 낸다. 엄마가 없다. 운다. 이 순간 아빠는 그냥 무존재에 가깝다. 얼마 뒤 엄마가 왔다. 잠시 칭얼대는가 했더니 곧 잠이 들었다. 허탈감.



우리 아버지들의

마음이 이랬을까


아빠야 딸에게 각별한 마음을 갖겠지만, 딸 입장에서는 기껏해야 하루에 2~3시간 보는 별로 친하지 않은 인간 중 한 명일 뿐이다. 퇴근 후 오후 늦은 시간에라도 아기와 친밀한 시간을 보내보려 하지만 어디 쉬운 일인가. 밤잠이 조금 빠른 아기라면 가자마자 아기를 씻기고 재워야 한다. 하루에 얼굴 두 번 마주치고 친밀해지길 바라는 건 욕심. 거기에 밀린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면? 


결국 아빠의 선택은 아기와 손이라도 몇 번 잡아보는 일. 그리고 서로 합이 맞는(?) 몇 가지 동작을 반복하는 일뿐이다. "그래도 우리 친구잖아?" 정도의 표현이라고 할까. 손가락이나 몇 번 맞춰보고, 악수하고, 입모양을 따라 하는 게 전부다. 그러고도 아기에게 쏟는 정성이 좀 부족한 마음이 들 때면, 인터넷에서 아기 장난감이나 옷을 주문하는 정도. 


아, 우리 아버지들이 밤늦게 퇴근할 때 양 손에 뭔가를 잔뜩 사들고 오는 그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충분히 잘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 그러면서도 피곤해 혼자 쉬고 싶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을 것이다. 그나마 주 5일 근무가 당연해지고, 저녁이 있는 삶이 각광받는 지금과는 달리 더 절박한 마음이었을 테지. 


초보 엄빠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아버지에게 "내가 한 살 때 아버지는 어떻게 지냈느냐"라고 물어보면 어떨까. 보통은 "네가 어떻게 크는 줄도 몰랐다" "어느 날 보니 걷고 있더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그 말에 흐르는 감정에 공감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길. 초보 엄빠인 당신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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