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당의가 제안한 1차 수술은 다른 뇌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척수액이 흐를 우회로를 만들자는 거였다. 만에 하나 종양이 4 뇌실의 중심관을 완전히 막더라도 뇌척수액이 다른 관을 통해 흘러서 뇌부종은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들리지만, 이것도 뇌수술이었다. 오른쪽 앞쪽 두개골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로 동그랗게 구멍을 내 머리를 열어야 했다. 그런 뒤 대뇌 안쪽 오른가쪽뇌실로 들어가 바닥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다시 두개골을 덮는 수술이었다. 문제는 오른가쪽뇌실 바닥 아래에 대동맥이 지나가는데 조금만 깊이를 잘못 가늠해 건들기라도 하면 대동맥이 그대로 터진다는 거였다. 담당의는 자신 있게 한 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의사는 내가 이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나긋하게 설명했다. 어려운 케이스라 무조건 잘 될 거란 낙관적 태도를 보이진 않았지만, 피가 낭자하는 의술을 최대한 다정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객관적인 설명 덕분인지 막연히 두렵기만 했던 뇌암이 비로소 떼어낼 수 있는 혹처럼 느껴졌다. 죽음의 고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졌던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방법의 차이일 뿐이라며 이 악성 신생 물질을 없앨 수만 있다면 뭐든 해보자 싶었다. 이날이 2013년 3월 28일이었다.
당장 입원해야 했지만, 병상이 없어 노심초사하며 나흘을 보낸 뒤 4월 1일에 입원 절차를 밟았다. 이틀 동안 1차 수술에 필요한 갖가지 검사가 진행됐고 입원한 지 사흘이 되는 4월 4일에 1차 수술이 이루어졌다.
1차 수술은 1시간 정도로 빠르게 끝났다. 전신마취가 처음은 아니라 정신이 들자마자 깊게 호흡하며 마취 가스를 몸에서 빼냈다. 통증도 거의 없었기에 몽롱한 정신만 아니면 수술을 했는지 모를 정도였다. 컨디션도 괜찮고 회복도 빨랐다. CT 결과 뇌가 정상 모양으로 돌아왔고 뇌압도 내려갔다. 다만 뇌가 제자리를 찾으면서 시력에 이상이 생겼다.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리게 보였다. 의료진은 일시적인 현상일 거라고 했다. 그 외 아무런 이상이 없었기에 나는 다음 수술을 기다리며 4월 6일에 퇴원했다.
시력은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시야가 뿌옇게 흐렸지만 체력 보강을 위해 엄마와 함께 오빠 집 근처 산을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2주 뒤에 있을 본 수술을 견디려면 건강한 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평생 해본 적 없는 삼시세끼 식사와 운동을 일주일째 했다. 어느 날 보란 듯이 시력이 돌아왔다. 그렇게 전쟁을 준비하듯 대수술을 대비하던 중 병원에서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