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는 다음 수술을 앞당길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환자의 수술이 취소되면서 생긴 공백에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조기 입원이 가능하냐는 물음에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고 1차 수술 후 8일 만인 4월 16일에 다시 입원했다.
아산병원에서 보는 한강 야경은 자못 인상적이다. 병실 창문은 작았지만, 복도 끝 통창에서 보는 풍경은 한밤에도 반짝거렸다. 바쁘게 움직이는 작은 불빛들이 새삼 부러웠다. 환자복을 입고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묘한 괴리감이 들었다.
그제야 주변이 눈에 보였다. 부산에서 종양을 처음 발견하고 1차 수술을 하기까지 딱 15일이 걸렸다. 진단 결과의 충격에서 채 헤어 나오기도 전에 모든 일은 너무 급작스럽게 흘러갔고 두 번째 수술을 앞두고서야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상황을 직시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신변 정리를 했던 것 같다. 은행 계좌 잔고를 확인하고 보험 목록을 정리했다. 문득 본가에 있는 일기장과 다이어리가 맘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부고를 받을 수도 있는 지인 몇 명에게 미리 연락했다. 놀람과 두려움이 섞인 슬픔의 안부 인사가 오갔다. (이들의 두려움은 혹시 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는 내 탓에 뇌 ct를 찍은 사람이 여럿이었다고 한다. 사람은 누군가의 불행에서 상대적 안도감을 찾기 마련이다. 씁쓸했지만 그들이 가깝지 않은 지인이라 다행이었다.)
그 외 딱히 할 일은 없었다. 서른셋에 돌아본 내 인생은 그다지 정리할 게 없었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탓에 죽음을 늘 생각했던 터라 최악의 경우가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다만 아쉬운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수술이 잘 돼서 살아나간다면 반드시 하겠다고 생각하며 버킷리스트를 써 내려갔다.
늦은 밤, 수술 전날의 피날레는 항상 수술동의서다. 일과를 다 마친 의사가 겨우 환자와 마주해 자신이 펼칠 의술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하는 시간이었다. 필요한 경우 ppt도 하신다. 당시 내 담당은 교수 1명과 펠로우 2명, 레지던트 1명이었는데 그날은 늘 서글서글하게 잘 웃는 곰돌이 푸를 닮은 펠로우 선생님이 악역을 맡았다. 그는 아주 쉬운 예를 들어가며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눈웃음을 지으면서 내 목뼈와 두개골을 분리하고 있었다.
일단 4 뇌실에 있는 종양에 접근하려면 두개골을 받치고 있는 둥근 모양의 환추라 불리는 1번 경추 뒷부분을 절개해야 한다고 했다. 멀쩡한 목뼈를 자르겠다고 하니 당연히 다시 붙여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라고 했다. 경추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경이 모여있어서 뼈 일부를 분리할 때 그것들을 일일이 다 지혈하기 때문에 다시 연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수술 후 내 1번 목뼈 일부가 소실되는 건 확정이었다. 그렇게 종양까지 접근하는데 4시간 정도 소요될 거라고 했다. 펠로우는 설명을 이어갔다.
뇌수술을 화재에 비유했다. 발화는 한 집에서 나지만 그 피해는 옆집과 윗집에도 번진다는 것이다. 뇌수술도 종양 제거가 목표지만 그 과정에 주변 조직을 건들 수 있어서 불가피하게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거다. 그중 가장 위험한 부분은 뇌간이었다. 특히 4 뇌실이 뇌간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혹여나 건들게 되면 발생할 후유증을 위에서부터 차례로 나열하셨다. 이런 것들이었다. 편마비가 오거나 연하 장애, 즉 식도로 음식물을 넘길 수 없는 상태, 혹은 운동 마비, 감각 장애, 시각 장애, 뇌 기능 장애 등이었다. 조직 간에 간격이 기름종이 한 장 차이라 위험하다면 암세포를 무리하게 박리하지 않고 남겨둔 다음 방사선 치료로 제거하는 게 낫다며 수술은 최대한 안전하게 진행될 거라고 했다.
2주간의 병원 생활로 놀랄 일이 더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나는 경악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복잡한 수술을 손으로 직접 해내는 의사의 능력에 경외감마저 들었다. 어떤 이유에서든 벌어진 입은 한동안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 순간 신을 대신해 인간을 살리는 의사도 내일의 나를 장담할 수 없었다는 사실에 나는 혼자임을 확인했다. 나는 수술 도중 사망할 수도 있고 영구적 장애를 입을 수도 있으나 성공적으로 잘 끝나 무사히 나올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가능성 중 어느 것도 장담할 수 없는 도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하겠냐고 수술동의서라고 쓰인 하얀 종이가 묻고 있었다. 살기 위해 불구덩이에 몸을 던지는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삶이라는 수직선 위에서는 이 문을 열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었다. 종교가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 문고리를 잡았다. 서류에 이름을 꾹꾹 눌러쓰며 부디 이 문을 열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