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폰더 Mar 12. 2024

8일

    회복은 무빙워크처럼 느리지만 꾸준했다. 개두술임에도 회복의 첫걸음은 내장기관이 제대로 작동하는 거라 의식을 찾고 물을 마시기까지 섬세한 주의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물에 적신 거즈를 입술에 올려 입 마름만 해소했고 몇 시간 뒤 거즈를 입 안에 머금고 거기에 스민 물기를 미량만 먹었다. 그런 다음 빨대로 조금씩 수분을 섭취했다. 단계별로 조심스럽게 몸을 깨웠다.

    물 마시는 게 어느 정도 안정되자 침상을 조금씩 세워 앉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10도, 15도. 경사도를 천천히 올렸다. 70도쯤 앉을 수 있게 됐을 때 미음을 먹을 수 있었고 90도로 앉을 수 있을 때 일반 병실로 이동했다. 간호사가 베드에 누워서 갈지 휠체어에 앉아서 갈지 묻자 당연히 앉아서 가겠다 했다. 멀쩡한 몸으로 중환자실을 나간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 호기롭게 한 잘못된 선택이었다. 휠체어가 집중 치료실 옆을 지나칠 때 그곳에 누운 환자를 보고 그의 빠른 회복을 빌었다.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일반 병실로 오기까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긴 시간이 아니었다. 그런데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오전에 먹은 물과 약이 역류해 쏟아져 나왔다. 수술로 헤집어 놓은 내 뇌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는지 이 정도의 시간도 몸을 수직으로 세우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누워있거나 기대앉아 있는 것만 가능했다. 머리에 이상이 있는 건가 싶어 식겁했지만 뇌수술 환자의 일반적인 증상이라고 했다. 며칠을 굶고 겨우 먹은 죽마저 토해버리니 체중이 급격히 줄었다. 환자복 안으로 갈비뼈가 선명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은 기력이 없었고 어지러움이 지속됐지만 의사는 계속 운동을 권했다. 모든 병원의 체계가 그렇듯 수술이 끝나면 환자가 빨리 회복해 퇴원해야 다음 환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원 중 회복은 어느 정도 압박적이다. 외과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수술 후 모든 검사에서 이상이 없었기에 나는 토하더라도 계속 일어서서 걸어야 했다. 병실 복도에 둘러쳐진 안전바를 잡고 더듬더듬 걸었다. 굳은 다리는 걷는 법을 새로 배우듯 어기적거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걸어도 구토하지 않았고 좀 더 오래 서 있을 수 있었다. 뇌가 다시 직립보행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후 나는 빠르게 회복했다. 무엇보다 질 좋은 수면이 빠른 회복을 도왔다. 뇌종양 증상 중 가장 힘들었던 게 얕은 수면이었는데 수술 후 신기하리만큼 잘 잤다. 식사 후 침대에 기대 있다가 낮잠을 잤는데 잠든 기억조차 없었다. 눈을 감고 잠이 들면 마치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아무 기억이 없었다. 이런 얘기를 윤양에게 했더니 잠들면 원래 그런 거라고 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러지 못했기에 이렇게 잘 수 있는 게 그저 신기했다.

    반면 뼈를 소실한 환추의 회복은 더뎠다. 여전히 통증이 심해서 레고 장난감처럼 삐걱거리며 좌우로만 겨우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런 목 상태로 수술 부위가 궁금했다. 하루 두 번 드레싱 할 때 양해를 구해 거울로 흉터를 확인했다. 두개골 아래쪽 머리카락에서부터 목까지 길게 의료용 스테이플이 박혀 있었다. 여기로 내 목뼈 일부를 제거하고 두개골을 열었겠구나 싶어서 한참을 구경했다. 켈로이드 피부라 흉이질 게 뻔하니 연고를 사야겠다 생각했다.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병원의 하루는 길고 지루했고 이때쯤 지인과 친척들의 면회가 이어졌다. 앉아서 얘기도 나누고 친구들과 지하 1층 식당에서 외식도 했다. 병원 밥이 아닌 다른 음식을 먹고 멀쩡히 서서 걸어 다니니 마치 온전한 일상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낯선 곳에 잠시 여행 온 것은 아닐까 생각했던 것 같다. 병원복이 아니었다면 내가 암 환자라는 걸 잊었을 거다.

    그런 생각이 들 때쯤 의사는 퇴원을 명했다. 입원한 지 고작 7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렇게 많은 일이 단 일주일 새에 벌어진 거였다. 나는 입원 8일 차인 4월 22일에 퇴원했다. 사이즈가 달라져 흘러내리는 옷을 겨우 걸쳐 입고 바깥공기를 마셨다. 

    암 환자 중 재발 판정을 받은 뒤 병원에 오지 않고 자연치료나 대체 요법을 선택한다는 기사를 본 적 있는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얼마나 힘든지 잘 알기에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거다. 나 또한 암이 무섭지는 않지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숨을 길게 쉬었다. 이게 끝이면 좋으련만 방사선 치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전 06화 8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