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6. 3. - 2021. 6. 4.
마음이 또 요동치기 시작해서 발레타의 랭귀지스쿨까지 걸어왔다.
어제 복도에서 행정직원과 잡담하다가 Costa카페의 할인을 알게 되어 아침일기를 이곳에서 쓰려고 들어왔다. 넓고 시원한 공간이다.
걸어오면서 흘린 땀을 식힐 수 있게 해주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고맙다.
젊은 남자 혼자 주문과 커피 만드는 일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집 앞 단골카페와 같은 2.5유로다.
이 나라의 커피 값에 비하면 조금 비싼 편이지만 이곳은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을 제공해 주고 집 앞 카페는 신선하고 풍미 깊은 커피를 주니까 그럴만하다.
수업 시작 전 아침에 사오십 분 정도 걸으니 오늘 하루의 일을 다 한 것 같다.
머릿속에서 맴도는 끝없는 고민들이 다 내 욕심 때문인 걸 알지만 그게 또 날 성장시키기도 하니까 내려놓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다.
6시쯤 눈이 떠져 카톡을 보니 희에게서 불안한 내용의 톡이 와 있었다.
산하가 어제 술을 마시고 아침에 몸을 가누지 못한다며 학교에서 전화가 왔었단다. 오 마이 갓.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
바로 선생님께 산하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톡을 보냈더니 별일은 아니고 모의고사 끝난 후에 아이들이 술을 사 와 기숙사에서 마신 거라고 한다.
오히려 멀리 있는 나에게 걱정 말라며 안심시켜 주신다. 휴.. 다행이다.
하지만 다음 주에 징계위까지 열린다니 걱정이다.
고3인 아들을 두고 이렇게 멀리 와 있는 엄마의 죄책감에 잠시 시달린다.
그러다가 모범생이기만 한 줄 알았던 산하가 이런 일탈을 한다는 게 귀엽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랑 비슷한 면이 있어서 겉으로는 반항을 안 하지만 속으로는 자신만의 주관이 뚜렷한 아이라 뒤늦은 사춘기를 걱정하기도 했는데 이렇게라도 푸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비행기표도 바꾸어야 하는데 생각이 워낙 갈팡질팡해서 결정을 못하고 있다.
취소하면 50만 원 정도 손해다.
그래도 산하 수능 전에 귀국하는 걸로 해야 할 것 같다.
하루에도 생각이 시계추처럼 끝과 끝을 왔다 갔다 한다.
몰타에서 디지털노매드들에게 6개월에서 1년 비자를 준다는 글을 읽고 그 방법을 검색하다가 그런 능력은커녕 뭘 시도하는 것 자체가 버겁다는 걸 깨닫고 얼른 핸드폰을 놓아버렸다.
랭귀지 스쿨 수업은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전형적인 수업과 공부는 지겹다.
학생들은 어리고 활기차지만 난 누구와도 어울리기 싫고 어렵다. 그래도 수업에 열의 있는 척 참여하고 나면 더 피곤하다.
수업 끝나고 혹시라도 누가 잡을세라 인사하고 바로 나와 버리지만 나머지 시간을 생산적인 활동에 쓰지 못하니 자꾸 마음이 처진다.
이럼게 왔다 갔다 떠도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