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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국 Aug 31. 2024

1년에 한 번, 아침을 먹는 나

가족이라는 선물이 곁에 있으니 가지고 싶은 게 없구나.


 난 아침을 먹지 않는다. 어머니가 강제로(?) 차려주셨을 때는 어쩔 수 없이 먹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챙겨 먹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다. 오히려 아침을 챙겨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지고 몸도 무거웠다. 든든함이 있긴 했지만, 오전의 가벼운 몸놀림을 방해하기 때문에 우유나 커피로 대신할 때가 많다. 교대 근무를 했을 때는 삼각 김밥정도? 대신 저녁을 거하게 먹을 때가 많았고 그래서인지 공복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아침을 피한 것이다.


 

 그런 내가 1년 중에 아침을 먹는 날이 딱 하루가 있다. 바로 내 생일날이다. 일전에 나도 아내의 생일상을 차려줬지만, 우리 부부는 생일이 이틀간격이다 보니 서로의 아침상을 차린다. 아내가 차려준 생일 상은 내가 만든 심플한 상보다 다채롭다. 내가 먹고 싶어 하던 갈비찜과 잡채가 있었고 요리마다 정성이 느껴졌다. 아내는 평소보다 나를 일찍 깨워서 준비한 아침을 먹인다. 육퇴 후에 밤에 요리를 만들었고 다시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날 위해 상을 차린 것이다.


 누군가가 날 위해 아침을 준비하고 전날부터 고생한 것을 알게 되면 그 결과물이 좋든 나쁘든 간에 고마운 마음이 먼저 든다. (그리고 식품공학의 정수이자 전문가들이 개발한 밀키트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일 년 만에 먹는 아침은 쉽지 않다. 아내가 옆에서 보고 있으니 남길 수도 없는 노릇. 미역국을 들이키며 밥을 다 먹었다. 아내를 잘 만났다며, 최고라는 말과 함께 식사를 마무리하고 출근 준비를 했다.



 아내가 준비한 두 번째 생일상은 어르신들이 좋아할 만한 현금이 구비된 모형식단이었다. 너무 귀여웠다. 생일 선물로 필요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 없다고 하니 챙겨준 것이다. 나는 아침에 생일상을 두 번 받은 것이다.



 집 대문에 아들이 쓴 편지를 보니 인증제 준비로 늦은 퇴근의 피로를 없애준다. 찡한 감동이 밀려오는 아들의 손 편지를 뒤로 하고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케이크를 들고 서있었다. 아내가 시켜서 한 거겠지만 이게 행복이구나 싶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없고 기존의 가스렌인지를 인덕션으로 교체해서 초에 불을 붙일 거리가 없었다. 아들은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저 달콤한 케이크는 아빠가 와야 먹을 수 있으니까.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신세계 센텀점에서 파는 유명한 케이크를 사 왔다. 맛도 맛이지만 나를 위해 준비한 그 마음이 고마웠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달달한 맛의 케이크는 아니고 라즈베리에 치즈가 들어있는 아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긴 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 선생님들과 친구들이 보내준 축하와 기프티콘을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헛살지 않았음을 느낀다. 더 잘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지.


P.S -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소화제를 사 먹고 간 것은 비밀. 그리고 아내가 준 돈으로 펜션이나 글램핑을 가기로 합의를 했다. 가족이라는 선물이 곁에 있으니 가지고 싶은 게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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