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교향곡. 환희의 송가.
문득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요즘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듣는다. 4악장의 합창, 합창 교향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전율이란. 이어폰으로 듣지 않고 공연장이나 오디오가 있는 공간에서 듣고 싶기도 하다. 이어폰으로도 이렇게나 감동을 주는데 현장감이 느껴지는 곳은 얼마나 더 좋을까?
내가 20살 때, 예술의 전당에 종종 가곤 했다. 공대 생활은 재미없었고 서울 생활도 지겨웠다. 하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볼 수 있는 공연은 좋았다. 그 비싼 티켓을 살 순 없어도 공연장의 실황을 모니터로 보여 줬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해서 어디서 공연들을 봤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티켓팅을 하지 않고 볼 수 있어서 행복했던 그 시절이었다. 20살의 나는 돈이 없어도 좋았다. 문 밖에서도 공연장의 울림은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칠 때 같이 박수를 치고 환호했었다. 그 행복감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줬다.
사실 클래식이나 피아노 연주곡을 틀어놓고 책을 읽는 것은 내가 즐길 수 있는 극상의 취미 생활이다. 취미라기 보단 힐링에 가까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조성진이 함께 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와 녹턴을 보고 감상한다. 세상이 좋다는 것은 이런 걸 두고 이야기하는 거겠지? 자신의 생애를 바친 훌륭한 연주자들의 공연을 방 안에 앉아서 감상할 수 있다. 내가 100년 전에 태어났다면, 생존을 위한 삶을 살았을 테다. 물론 그 와중에도 희망의 빛을 찾아갔을 테지만.
세상은 아름답고 여전히 살만 하다. 과거를 누릴 수 있고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삶이란. 현재에 고마운 밤이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들으며 오늘도 마무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