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연희 Nov 06. 2022

요도염과 커피, 그 애증의 관계

어떻게 하면 슬기로운 고리를 만들 수 있을까.

분명히 나의 브런치 어딘가에 요도염을 예방할 목적으로 커피를 끊었다는 사실을 밝혔었다. 아마도 워터케피어의 알코올로 인한 해프닝을 설명하다가 언급했던 것 같다. 지난 3월. 달 수로는 9개월 차에 접어든 셈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때에 나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있어서 마시고 마시니까 마시는 그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다. 중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고 실제로 마시는 횟수와 양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고 믿어 왔다. 대학교 들어가면서 마시기 시작했으니까 삼십 년 동안 그 마시는 때와 장소, 양과 종류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최근 오 년 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적극적으로 커피를 마신 기간이 아닐까 싶다. 


이른 아침 일터에서 뜨거운 k-cup 캡슐 커피를 블랙으로 한잔 마시는 것이 고착화되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친구들을 만나서 브런치를 먹으면 어김없이 식전 그리고 식후에 또 한잔, 한 달에 한 번 정도 누구 집에서 저녁 초대가 있으면 식후에 연거푸 잔을 채워가며 늦은 밤까지 커피를 마시곤 했다. 크림이나 우유, 설탕 등을 절대로 넣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블랙을 마셔왔고, 따져보면 하루에 한잔 꼴이라 석 잔 정도를 기본으로 마시는 이웃 친구들과 비교해 양호한 편이라 여기며 살아왔다. 아침 출근길에 커피 한팟을 들이붓는 많은 미국 사람들을 보아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대학 때부터 종종 카페인 쇼크가 발발했었지만 특정한 상황 - 빈속에 과중한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 스트레스 상태, 콜드 브루나 스타벅스커피 같은 카페인이 더 심하게 함유된 진한 커피 복용 - 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미리 예방할 수는 있었다. 나이 들고서는 자연스럽게 과용하는 일도 줄었고 큼직한 주스잔에 얼음 반 채우고 다방커피 두 개를 녹여 넣은 정신줄잡기용 아이스커피 같은 초특급 카페인 음료수는 아이들이 어릴 때 일, 이년 하다가 그만두었다. 


커피 맛을 남들처럼 잘 모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요도염을 달고 사느니 차라리 커피를 끊어서 경과를 보자고 결심했을 때, 마음이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커피가 생각보다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차 싶었다. 생각보다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덜컥 두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일주, 이주 지나면서 뭐라고 딱히 꼬집어 말하기는 뭣하지만 배꼽 언저리와 아래 복부가 가끔씩 조이는 듯한 느낌이나 그쪽 어디가 묘하게 불편했던 증상들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 결심을 번복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렇게 훌쩍 지나버린 팔 개월의 시간 동안, 위에도 언급했던 워터케피어 음료수의 알코올로 인한 요도염 발생 한 번을 제외하고(그때 워터케피어 복용은 바로 중지했다) 여태껏 요도염 없이 지내온 지난 시간이었다. 


나는. 성공한 것이다. 


남편은 커피, 나는 아무 티를 마시는 새로운 일상

 

달리 표현하자면 그동안 잦게 내 인생의 질을 떨어뜨리던 요도염은 커피가 결정적인 부채질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마도 내가 섭취하는 수분의 양과 맞물려서 두 개의 팩터가 박테리아의 증폭을 결정했을 것 같다. 신우신염을 한번 앓았던 나의 콩팥은 예전처럼 건강하지 않았을 것이고 커피의 음용은 강력한 이뇨작용과 함께 어떤 식으로든 신장에 무리를 주고 체내 수분 함량을 급격하게 떨어뜨리며 박테리아가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었으리라. 


평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옆구리가 콕콕 쑤시거나 아랫배가 싸하게 조여 오는 증상들은 다 세심하게 챙겨 들었어야 할 몸의 신호였던 것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살면서 분기에 한 번씩 요도염을 앓아온 것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참 안타깝지만 사실, 그런 감정도 잠시일 뿐, 앞으로 요도염 없는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날아갈 것만 같다. 병 없는 일상을 살 수 있다는 기쁨 반, 숙고 끝에 도전했던 나의 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난데 대한 기쁨이 반이다.    


하지만 요도염 없이 편하게 살다 보니 지난주부터 간사한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꼭 이렇게 단 한 방울의 커피도 마다할 필요까지 있을까, 혹시 커피의 종류와 음용방법에 변화를 주면 지금처럼 무 자르듯이 싹둑 자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싶은?




무려 팔 개월 만에 먹는 커피, 이 감격스러운 순간 



그렇게 해서 오늘 팔 개월 만에 처음으로 커피를 마시게 된 것이다.

나의 계획은 이렇다. 그동안 즐겨왔던 빈속에 블랙커피를 멀리하고, 우유를 섞은 카푸치노나 카페오레, 라테를 마시되 될 수 있으면 차가운 것보다 뜨거운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밥을 잔뜩 먹고 배가 불렀을 때만 음용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잔뜩 먹고 나서 아이스 카푸치노 반잔을 살짝살짝, 한 모금씩 오랫동안 마셨다. 실온수를 함께 마셔주며 수분을 보충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커피를 마시기 위한 노력이 조금 눈물겹기는 하지만 만약에 이 정도를 조심해서 나의 신장 건강도 지키고 커피의 풍미가 주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면 해 볼만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뜨겁고 쓴 커피가, 아무것도 없는 식도와 위를 훑어 내려갈 때 소용돌이치던 희열, 나를 벌주고 또다시 끌어안는듯한 그 따뜻함은 이제 맛볼 수 없다. 하지만, 정을 붙여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까워지지 않는 tea()의 세계로부터 가끔씩은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 그 정도면 나는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