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티 Dec 22. 2024

느리지만 하얀 아이



류호림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집 앞에서 50m조차 되지 않는 거리의 편의점을 가봤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정상인 줄 알았습니다. 한 번도 내가 늦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시야는 점점 넓어지고 있었고, 언젠가부턴가 나는 비로소 내가 느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며칠 전 기가 시간에 실습을 했습니다. 주제는 팬케이크 굽기와 라면 끓이기. 친구들과 팬케이크를 다 만들고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친구들은 하나 둘씩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라면을 한 번도 혼자 끓어보지 못한 탓에, 우물쭈물하며 친구들의 요리를 빤히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호림이 라면 안 먹어?” 나는 내가 느린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냄비를 꺼내들어 인덕션에 내려놓았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있으니 친구가 말했습니다. “물 왜 안 넣어?” 그때의 물이라곤 수돗물 밖에 없었기에, 나는 물이 어디있느냐고 말하자 친구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에게 말했습니다. “너 설마 라면 안끓여봤어?” 친구들은 주변에서 나를 곱게 자란 아이라고 입마르도록 말하기 바빴습니다. 더 많은 친구들은 이러한 나에게 더 관심을 가졌고, 그때의 내 표정은 어떤 표정이었을까요, 나는 곱게 자랐다는 한 마디에 멍청하게 웃음짓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한 채 말이죠, 생각해보니 내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다름아닌 “공부만 잘하는 바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나는 우리 엄마로부터 소중하고 깨끗하고 안전하게 자라왔습니다. 사실은 그게 공주처럼 곱게 자란 것이 아니라 세상을 너무 모르는 머저리로 자라온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결코 엄마를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어느 부모도 자신의 딸이 더 안전했으면, 행복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테니까요. 하지만 나는 먹지 말았어야 할 앨리스의 물약을 마셔버리면서, 돌이킬 수 없이 커져버렸고, 나는 성장한 것일까, 성숙해져버린 건지, 알지 말아야 할 걸 알아버린 것일까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딸랑거리는 크리스마스 장식들에, 점점 더 크게 들려오는 캐롤 소리에, 나는 친구와 단둘이 롯데월드를 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마음은 설레왔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와 예쁜 사진도 많이 건질 생각을 하니 그저 남은 시간들이 행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약속 4일 전, 엄마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엄마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시더군요. “연말에 사람 너무 많아, 압사사고 당해, 그것도 단둘이? 미친 사람들이 있을지 어떻게 알아” 어릴 적 나였다면 엄마 말을 무조건 따랐을 것입니다. 내 나이에 엄마 말을 듣는 것은 당연하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달랐습니다. 너무나 소망하고 기대했던 것이 위태로운 촛불 마냥 꺼질락 말락 하는 희미한 불꽃에, 나는 어떻게든 이 촛불에 희망이라는 산소를 부여하기 바빴습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처참히 커다란 발에 밟히고 말았죠. 그때 얼마나 마음이 허무하던지.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처럼, 나는 내 또래 친구들은 모두 연말에 놀러간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었기에, 더욱더 허망하고 공허해졌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커다란 손길은, 내 인생에 있어서 안전벨트일까요, 안전한 족쇄일까요. 물론, 엄마의 태도를 나 자신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나와 중학교 3년을 고작 함께할 친구와, 놀이공원을 가다 압사당할 확률도 존재는 하니까요, 그 하루를 위해 내 인생에 흉터를 남길 수 있는 확률 자체를 얻는다는 것은 사실 좋은 선택이 아니니까요.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이상 느린 열넷이 아닌, 보통의 열넷에 가까워졌나봅니다. 내가 그 친구에게 약속을 취소한다고 문자를 보낼 때의 나의 표정과, 손짓은, 더 이상 보호받았다는 것에 안도하는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공허하고,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고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구김은 없지만 감정도 없던 그날의 표정과 함께 내 하루는 흘러갔습니다.

 

 

어제, 수학캠프를 다녀왔습니다.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그 때 내 말을 거절하던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표정과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상처 없이 살아왔던 하얀 내 마음에 거친 나뭇가지가 내 마음을 긁었고, 타격없는 다른 친구들과 다른 내가 너무 뭣도 모르고 살아왔나, 싶었습니다. 또한, 팀원 중에는 고등학교 선행을 나간다던 학군지의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공부말고는 발표도, 보고서 작성도 아무것도 못해 팀에 해가 되기도 했었죠. 그런 걸 보면서, 꼭 인생이 공부만 잘한다고 풀리진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살다보면, 실패도 해보고, 상처도 받아봐야 한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들어왔던 말이죠. 하지만 정작 나는 너무 하얗게 자라온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의 표면은 상처와 기스들이 존재하지만 다채로웠던 단면에, 나는 그저 나만의 색깔없지만 깨끗한 하얀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이 나에게 곱게 자랐다는 말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내가 수학캠프에서 공부만 잘하는 아이에게 느꼈던 감정과 꽤 비슷했으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트릭스>의 주인공처럼 진짜 세계를 알아버린 탓에, 막막하기도 하고 아주 조금, 아주 조금은 상쾌하기도 합니다. 항상 엄마라는 지구가 나를 큰 질량으로 끌어당겼다면, 알 수 없는 곳에서 나를 더 큰 질량으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는 비로소 뉴턴의 사과가 되어, 더 거대한 현실로 굴러갑니다. 나는 앞으로도 하얀 아이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이제 모르겠습니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더 많은 것을 알고, 조금 더 긁혀보려 합니다. 아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아픔들은 보통의 아이들이 이미 겪어온 시련이라 생각하며, 나는 레일 속 뒤쳐져 있는 나를 보며 좀 늦은 준비자세를 취합니다.

 

 


들려오는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앙칼진 브레이크음, 나는 홀로 레이싱 트랙에 서있습니다. 내면의 균형은 깨져버렸지만, 인생은 균형 잡는 것만 같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에, 위험하지만 무한한 현실의 출발점에서 나는 엔진을 태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