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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피쿠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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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ug 11. 2024

피쿠

피쿠와 함께 겨울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던 피쿠는 다행히 돌아왔다. 벌써 피쿠와 맞는 네 번째 겨울이다. 이제 피쿠도 제법 키가 자라서 늠름해 보였다. 웃을 땐 반달같이 작아지는 피쿠의 눈. 함께 지낸 겨울이 많을수록 편해져야 하는데, 설레고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침대, 피쿠는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잘 준비를 했다. 

 

 “너는 왜 내 집을 만드는 거야?”

 “이유는 딱히 없는데. 내가 집 만드는 걸 좋아해서.”

 “다른 이유는 없는 거야?”

 “아, 있어. 다른 행성에서 만들어 보는 게 소원이었거든. 집을 원하는 클라이언트도 여기 있고.”


 그렇다. 피쿠는 그저 집 만들기를 좋아하는 외계인일 뿐이다. 처음 갖는 이 감정을 피쿠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가 집에 있는 것이 더는 싫지 않았다. 피쿠가 없어도 그 마음이 유효하냐는 질문에 확신하듯 대답할 순 없겠지만. 피쿠가 온 뒤로 매년 봄마다, 여름마다, 가을마다 이 집에서 적응하는 연습을 했다. 피쿠가 없어도 숟가락을 꽂아 잠그고 이 방에 홀로 잠드는 연습.

 피쿠는 여전히 저녁마다 집을 지으러 갔다. 함께 가도 되냐고 물었지만 피쿠는 원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피쿠는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내가 학교 다녀오기 전까지 손빨래도 해놓았는데, 내 속옷도 직접 손빨래하려는 바람에 나와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집에 와서 피쿠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시시콜콜 다 이야기한다. 그럴 때마다 피쿠는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너 혹시?”

 “T 아니라 F인 거 알잖아.”


 그렇다. 피쿠는 ENFJ였다. 나랑 정반대 성향이지만 피쿠는 나를 맞춰줬다. 최대한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욕은 아랍어나 불어로 했다. 같이 있으니까 시간이 빠르게 갔다. 곧 있으면 피쿠는 다시 돌아가야 한다. 수능 날 도시락을 싸주던 피쿠도, 야간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나를 저녁마다 데리러 오는 피쿠도. 잠시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가 아니면 어떡하지. 이번엔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피쿠와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피쿠가 피쿠의 행성에서 살아가는 건 당연한 건데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익숙해지는 요즘이었다. 그렇게 피쿠는 또 한 번 떠났다. 


올해 십일월에도 피쿠를 보고 싶다. 피쿠는 돌아올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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