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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피쿠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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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l 14. 2024

피쿠

집이 싫다.

 “안녕.”

 “넌, 누군데 우리 집에 있어?”


 열여섯 겨울 즈음에 모르는 아이가 우리 집에 왔다. 학교 마치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에 그 애가 서 있었던 것. 할아버지 말로는 길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아이를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데려왔다고 한다. 귀가 없고 나이는 나랑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할머니는 피쿠가 탐탁지 않아 반대를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평소에 따뜻함이라곤 전혀 없던 할아버지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 어쩌면 나한테만 차가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면서 속이 상해 있는 도중에 아이가 웃으며 나를 꼭 끌어안았다. 나는 뜬금없는 행동에 더 화가 나서 아이를 밀쳐 넘어뜨렸다. 그 순간 할아버지는 내 뺨을 때렸다. 


 “아, 왜?”

 할아버지는 가엾은 아이한테 그러는 거 아니라며 나를 호되게 나무랐다. 

 “나는?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데, 나는 안 불쌍하냐고!”

 나는 그 말을 하며 할아버지를 노려봤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 질렀더니 할아버지는 미닫이문을 열어 쾅 닫고 방 안에 들어섰다. 바깥까지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듣기 싫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방문을 열었다.

 “얘, 네 방에서 좀 지내게 해라.”

 “아니, 방도 두 개뿐인데, 할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데리고 왔대?”

 “쉿, 저 애가 듣잖아.”

 “들으라지.”

 아이는 주눅 든 모습으로 내 방에 들어왔다.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잠시 후 아이는 대답했다.

 “없어.”

 “장난칠 기분 아니다. 빨리 말해.”

 “진짜 없어. 내가 살던 곳엔 이름을 안 만들거든.”

 아이는 한숨을 쉬며 이야기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더는 말을 섞기 싫었고 언제까지 야,라고 부를 수만은 없었다. 

 “그럼, 넌 피쿠 해.”

 “왜?”

 “아, 몰라! 피쿠라는 이름이랑 잘 어울리게 생겼나 보지. 자, 이제 우리는 한 방에 있지만 서로 없는 사람인 냥 지내면 돼.”

 피쿠의 눈가에 시무룩한 주름이 흘러내렸다. 침대 위에 누워서 장편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상처받은 표정의 피쿠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괜히 짜증이 났다.


 “난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해. 워낙 독립적이어서. 그래서 스무 살 되면 이 집도 안녕이고.”

 “스무 살에 어디 가?”

 “나 집 나갈 거야. 난 가족들도 이 집에도 정이 없거든.”

 피쿠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이불을 주섬주섬 개고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소설을 완독하고 시계를 보니 저녁 일곱 시가 넘었다.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보니 주위가 캄캄했다. 피쿠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낯선 아이와 한방에서 지내라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쿠가 돌아오지 않길 바라며 방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머물렀다고 방 안에 피쿠 냄새가 번졌다. 오히려 잘된 거다. 나는 피쿠가 돌아오지 않길 바란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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