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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피쿠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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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l 07. 2024

피쿠

피쿠는 외계인이다.

 피쿠는 외계인이다. 

그것도 사람과 모양이 무척 흡사한. 사실 피쿠에겐 원래 이름이 없었다. 

이름을 지어준 것도 불러 준 것도 내가 다 처음이다. 피쿠가 사는 행성에는 생물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데, 서로를 어떻게 불러?”

 “서로를 부르지 않아. 우린 누군가와 소통하려 할 때 눈에서 빛이 나오거든. 그 빛이 뻗어서 상대방에게 닿으면 다 알아.”

 “그럼, 대화는?”

 “우린 소리 내서 대화 안 해. 똑같이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 대화하거든. 그래서 인간이랑 다르게 귀가 없는 거고.”


 잠시 잊고 있었다. 

피쿠는 들을 수가 없지. 그는 지구에 와서 입 모양으로 언어를 읽어냈다. 지구에 있는 190여 개국에 언어 능력을 만드는 칩이 피쿠에 머릿속에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피쿠는 한국어를 한국인인 나보다 잘한다. 나는 수학과 함께 영어도 포기한 지 오래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피쿠는 자신이 불리해지거나 화가 나면 영어나 불어, 가끔은 아랍어로 얘기한다. 아마 내 욕도 섞여 있을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미닫이문 잠금장치로 숟가락을 사용한다. 자물쇠가 부서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물쇠가 걸려 있어야 할 구멍 사이에 숟가락을 꽂는다. 그럴 때마다 옆에 있는 피쿠, 이 똑똑한 외계인이 무용지물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어 할 줄 알고, 버스같이 생긴 우주 비행선을 탈 수 있으면 뭐 하나. 겁이 많아서 도둑이 들면 얼어있기만 할 텐데. 이부자리를 펴서 몸을 뉘이려고 하는데 피쿠가 벌떡 일어났다. 


 “아,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드리는 거 깜빡했다!”

 “내일 해.”


 피쿠는 내 말을 듣지 않고, 숟가락을 빼서 문을 열고 할머니 할아버지 방으로 갔다. 기어코 인사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하긴, 저렇게 예의가 바르니 매정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돈도 안 받고 우리 집에서 겨울마다 숙식을 해결하지. 잠들려 하는 피쿠를 바라보니 첫 만남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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