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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피쿠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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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Aug 04. 2024

피쿠

외계인 피쿠

 “너, 뭐야?”

 “아니야, 네가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진 몰라도. 내 말 좀 들어줘. 나 진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무슨 할 일? 망치랑 톱이나 놓고 말해.”

 피쿠는 곧바로 내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다 해주었다.

자기는 사실 지구인이 아니라고.

저 앞에 버스처럼 생긴 것이 비행선이라고 말했다.

믿기지 않았다. 피쿠도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는지 더는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멀찍이 서서 손짓했다.

"타도 돼."


나는 한참을 망설였다. 저 버스가 나를 낯선 곳으로 데려가면 어떡하지. 피쿠가 어떤 사람, 아니 어떤 외계인일지로 모르잖아.

하지만 피쿠의 눈동자를 본 나는 결국 버스 안에 탑승하게 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태어난 이래로 가장 믿음직한 눈동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를 쉬이 믿어본 적 없었다.


 “자, 출발한다!”

 버스는 이륙했고 처음엔 도시가, 그리곤 우리나라가, 다음엔 지구 전체가 작아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는 우주를 유영했다. 그렇게 한참을 떠다니다 우리는 다시 숲으로 돌아왔다. 피쿠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똑똑히 봤다. 그러나 봐도 봐도 믿기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집으로 돌아와서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내 옆에 외계인이 있어서일까. 이전 세상은 허무하고 지루하기만 했는데, 피쿠가 내 방에 들어온 이후로 조금은 달라졌다.

 

 “아까 망치랑 톱은 왜 꺼냈는데?”

 “혼자 살고 싶다며. 작게나마 너 집 만들어 주려고. 진짜 작게나마.”

 “나 쫓아내고 대신 여기 살게?”

 "그런 건 아니라고."

 피쿠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이상하게 이젠 한 방에 둘이 있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외계인이어서 나한테 마법이라도 걸었나 싶기도. 그라나 그건 해리포터가 할 수 있는 능력이피쿠가 그럴리 없다.

방안이 따스해졌다.

피쿠가 그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나 이제 곧 돌아가.”

 “응?”

 “우리 행성은 항상 겨울이야. 그래서 지구에 온 뒤로 겨울이 있는 곳만 돌아다니고 있었거든. 겨울이 아니면 난 안 돼.”

 

피쿠는 추위에 적응하며 살아와서 겨울이 아닌 계절은 살아가지 못한다. 이곳 한국에 온 이유도 그저 겨울이 있는 나라 중 하나여서라고. 한국에 와서 잠시 쉬고 있는데 열쇠를 잃어버려서 버스에 다시 탑승할 수 없었다. 추위에 약하지 않아 박스 정도만 덮고 바깥에서 자도 나쁘지 않았단다.  그랬는데, 그때 할아버지와 피쿠가 마주했고. 처음엔 열쇠만 찾으면 더는 신세지지 않고 다시 돌아가리라 다짐했다고.


하지만 피쿠는 열쇠를 찾았음에도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꾸준히 밤마다 외출하고 돌아왔다. 내가 살 작은 집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피쿠는 자신이 살던 행성에서 건축을 업으로 했다고 한다.

 

 “무슨, 너 나랑 나이 비슷해 보이는데. 말도 안 돼.”

 “우리는 어른의 의미가 달라. 진정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야만 어른이라 불러. 그래서 난 일찍이 어른이 됐고, 직업이 생긴 거야.”

 피쿠의 행성엔 평생 어른에 가닿지 못한 채 죽는 이들도 꽤 있다고. 하지만 평생을 아이로 남았던 사람들도.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어른이 된 사람들도. 모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행성이라고.

 

 “그럼, 이제 영영 안 와?”

 “아니, 집은 완성해야지.”

 "진짜?"

 "응."


 머지않아 피쿠는 정말로 떠났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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