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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피쿠 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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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수 Jun 30. 2024

피쿠

이기적인 OOO

우리 집은 언제나 그랬다. 잠기지 않는 문, 그 문을 통하여 누구든 들어올까 무서웠다.


어떤 날은 아무도 들어오지 않길 바라다 잠을 설쳤고, 해가 뜬 후에야 눈을 붙인 적도 있다. 스무 살이 되면 어떻게든 이 집을 떠야지. 이곳에서 오래는 살 수 없겠다 싶었다.


 아, 어쩌면 스무 살이 된 직후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보증금을 최소한이라도 모아야 할 테니까. 그러면 지금부터 슬슬 저축하기 시작해야 했다. 겨우 열다섯이고 한 달 용돈이 오만 원 밖에 안되지만, 이만 원씩 저축해서 오 년간 모으면 백만 원쯤은 모일 테니까. 그렇게 열다섯의 봄부터 계획된 계산은 일 년도 채 가지 않아 틀어졌다.


이번 달만 다 쓰고 다음 달부터 모아야지 하던 것이 습관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사실 오만 원이란 돈은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래서 필요한 돈을 메꾸기 위해 할아버지의 동전통에 몰래 손댄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동전통을 더 깊숙한 곳에 뒀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동전통을 다시 찾아냈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과감해지기까지 했다.


 언젠가 할아버지의 생활비 봉투까지 털어본 적 있다. 딱 삼만 원만 빼가야지. 오늘이 마지막이야. 하며 손을 댔다. 그때 할머니는 수수 빗자루를 들고 쫓아왔다. 죽은 네 아비 따라가라며. 다행히 나는 아빠를 따라가지도,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았다. 그렇게 열아홉이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너는 내년에 나갈 준비를 했겠네?”

 “그렇지. 근데 굳이?”

 “덕분이네.”

 나는 피쿠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나에겐 피쿠 말고 아무도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내가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는 것과 공부와 담쌓은 모습을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내겐 없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내가 다섯 살 때 갈라섰다. 이혼의 여파로 아빠는 심하게 방황했다. 그러다 내가 일곱 살이 될 무렵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믿기지 않았다. 내 옆에 있던 아빠가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일곱 살에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잠시 이해를 멀리 보내기로 했다.

 “가끔은 여름에도 널 보고 싶고, 봄에도 널 보고 싶어.”

 피쿠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런 피쿠에게 기대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짜증 나게 왜 넌 겨울에만 오니. 이기적인 외계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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