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어떤 생각이 들면 무조건 글로 남기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억이 사라지는 것만 같아서 뭐든 습작처럼 남기려고 한다. 긴 글을 쓰는 게 조금은 어렵다. 책을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이전의 습작들을 정독하며 한 해가 마무리될 시점에 연말정산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아직 11월 중순밖에 안 됐지만 요 근래 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겨울이 성큼 다가왔구나를 실감한다. 마지막 발행이 꽤 오래전이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드는 이 공간에, 여태 밀린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한다.
1.
지난해의 나는 의연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올해에는 조금 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작년 가루처럼 부서지며 침체했던 시기를 겪으며 강한 것이 최고의 자질이라며, 다른 감정들을 버텨낼 단단함을 원했다. 타인의 평가 속에서도 나는 오롯이 나로 살아남기를,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라고, 누군가의 사랑보다 내가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기를, 나를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은 사람을 상냥히 대할 수 있기를 원하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매뉴얼을 스스로 만들었다.
그렇다면 올해의 나는 그 매뉴얼을 잘 실천하며 살아냈을까 자문하면 그렇게 자신 있는 확답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다. 올해도 나는 결국 정신없이 낙담하고 흔들렸으나, 그 과정에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은 나의 색이 더 뚜렷해져가고 있다는 것. 학교를 다니면서 회사도 다녀보고, 워크숍, 독서모임에 나가 폭넓은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보고, 에디터로써 글을쓰고 예술팀에 소속되어 작업하며 나와 비슷한 행보를 걷는 사람들을 보며 느낀 것은,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이었다. 자신감은 신념이다. 그 빛나는 자신감은 마치 향수처럼 사람을 은은히 감싸 커다란 힘을 만든다.
2.
최근 들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오래도록 상념에 젖어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그 수많은 시간과 과정들이 좋아서, 계속해서 공상을 위해 새로운 것을 보고 접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접하며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을 주변 사람들과 깊게 나누는 과정에서도 새로운 것을 얻어내고 확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역시 사람이 좋구나,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로부터 영감을 얻고, 그것이 나의 삶을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구나를 실감한다.
3.
수능이 끝나고 일 년 만에 재회한 학교 선배의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있었다. 그 낯선 물건을 쥐고 하루 종일 나를 찍었던 선배. 별 탈 없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하루라고 생각했으나, 후에 선배가 보여준 그날의 필름을 보고 난 이후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날의 기억은 내가 카메라를 사게 된 이유였다. 지독히도 평범한 일상들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만들어주는 카메라는 그 뒤로 나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것은 나의 기억과 느낌들을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바꿔놓는다.
나는 그 뒤로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이 취미가 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 동묘시장에서 구매한 5만 원어치의 낡고 볼품없는 카메라로 시작했으며, 이내 사진에 대한 욕심이 점점 커지더니 수많은 필름 카메라를 모으고 이내 디지털카메라로 갈아탄 나.
그렇게 사진을 찍은 지 어느덧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선배는 최근 한 달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이번 여행에서만 사용한 필름이 7개, 총 252장의 사진들을 가져온 선배는 그중 일부를 내게 보여줬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디지털이 발전해도 아날로그가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가 있구나.
나는 선배의 사진을 볼 때마다 선배의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고, 선배가 셔터를 내리는 순간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역시 사진에는 거대한 힘이 있구나. 그리고 그 거대한 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나 자신이 조금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4.
제법 외향적인 성향이다 보니 많은 집단에 속해 살아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접하는 나는 인간관계가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늘 감사하게도 나의 중심에는 좋은 인연들이 존재하나, 나는 여전히 관계를 상실한 이후 밀려오는 공허감에는 온전히 의연해지지 못했다. 누군가를 죽을 만큼 미워한 경험도, 죽을 만큼 미움받은 경험도 있는 나는 한 사람의 원망이 타인에게 겨눠질 때 얼마나 커다란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는지, 그게 너무나도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뒤로는 함부로 타인에게 원망을 품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건 참 예상 밖의 일 투성이라서 내가 평생을 믿은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나의 별, 나의 우상이라고 추앙했던 존재가 단숨에 밑바닥으로 전락해버린다던가. 내게 관심을 표하며 젠틀하게 다가오는 어떤 이는 사실 주변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폭언을 하는 무시무시한 행적을 밟아온 사람이었다던가. 내가 좋다고 여겼던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한 없이 미운 원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도.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발생한다. 사람들은 인생을 살며 때때로 이런 경험을 한다.
작년 이맘때 너무나도 깊어 나를 괴롭게 했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떤 이에게 억울하게도 죽을 만큼 미움을 받으면서 느낀 생각이었다. 분명히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전부 내가 맞다고 하는데, 나를 오해하고 원망하는 그 사람이 그의 세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 아닐까? 그 사람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지닌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원망의 대상이 되어도 마땅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된다. 그 이후로 내게 선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물론 정상인의 범주 내의 행동을 말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악인이거나 범죄자에게도 서사가 있다거나 등의 이런 말도 안 되는 의미가 아니다.)
학창 시절 다수가 싫어해서 늘 혼자 다니던 그 학생은 과연 소문과 같이 못된 아이 었을까. 이 세상에 미움받아 마땅한 사람이 존재하기는 할까. 사람이 타인을 증오하고 헐뜯는 것이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비틀린 마음으로 서로를 찢고 태워버리면 무엇이 남는가. 감히 우리들은 그럴 자격이 있는가. 사람들은 누구나 부족한 점을 갖고 태어나는구나. 나도 누군가에게는 악마같이 못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 기분이 참 묘하다. 작년 이맘때부터 일 년째 지속된 이 물음은 점점 커져만 가서 수없이 번뇌하던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고 결국 스스로 정답을 내려야만 했다.
모든 이들에겐 수많은 페르소나가 있어서 어떤 부분에서는 존경스러운 면이, 배우고 싶지 않은 추악한 면들이 공존하며 그중 어떤 부분이 자신에게 더 크게 느껴지느냐에 따라 대상과의 관계를 유지할 앞으로의 행보가 결정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도 역시 사람인지라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은 못하겠으나, 이제부터는 상대방이 밉다는 이유로 도망치는 것이 아닌, 그 옆의 내가 싫어서 도망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머문 뒷자리는 반드시 돌아보고 확인해야 한다. 정신없이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